정혜련 사회복지사

 

[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친하게 지내는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는데 갑자기 “언니, 나 인터넷으로 사주팔자를 봤는데, 고독하고 평생 노동해야 하는 팔자래” 라며 주머니 한쪽이 툭 터지듯이 쏟아냈다. 동생은 그 얘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찾아본 사주팔자 내용을 한참 설명했다. 유명한 공대를 나온 그녀가 가끔 역사나 문학에 대해 어두울 때마다 “이과생”이라고 농담은 했지만, 똑떨어지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이 매력인 녀석인데, 뜬금없이 사주팔자라니 황당하면서도 우스웠다.

요즘 뭔가 일이 답답하다고 하더니 그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평소답지 않게 사주팔자를 얘기하는 모양이 진지해서 나름 해석을 해주었다.

“사주팔자가 만들어진 게 천년도 넘었잖아.”, “과거에는 가부장제니까 너처럼 똑똑하고 주관 뚜렷한 여자는 사회생활도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하니, 과거에는 팔자가 세다며 억누르고 조심하라는 해석이 나왔겠지만 현재는 그게 안 맞아.”,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광대였던 끼 있는 사람들이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어떠니?”, “다들 예술인, 연예인 돼서 인기도 얻고 좋잖아.” 교회언니인 나의 해석에 이과생 동생은 위안을 얻었는지 그제야 목소리가 밝아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녀와의 대화가 한동안 맴돌았다. 엉뚱한 동생의 걱정이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운명이라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 말하지만 좀 더 정확히는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이라고 할 수 있다. 명리학 전문가들은 점술과는 선을 그으며 하늘의 뜻을 연구하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중국 진나라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당사주’ 만 생각해도 7세기니, 그 역사가 대단하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하고 AI인공지능시대가 온다고 하는데도, 결국 인간의 마음은 그다지 변함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주가 동일해도 성별에 따라 다르고, 부모와 주변인의 사주에 따라 다르다고 하고, 여기다 배우자의 사주도 영향을 준다니 참으로 어렵다.

나는 내 운이 좋을 때와 나쁠 때를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아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만났고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도 만났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얻은 것도 있고, 열심히 노력해도 실패했던 적도 있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 깨달은 것은 좋은 사람과 좋은 운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삶의 격려가 되었으며, 고통을 준 사람이나 실패는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인격적으로 성숙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운명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 되어도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내 삶을 조각하는 시간들이었다.

토정비결을 지으신 이지함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적다는 것은 없는 것의 출발점이다, 적어지고 또 적어져서 더 적어질 것이 없는 상태에 이르면 마음이 비고 신령스러워진다” 결국 내 마음을 비운 사람은 사주팔자마저 초월한다는 것이다. 불행을 피하고 행복한 운을 위한 지침서를 지으신 분의 말씀이니 더욱 새겨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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