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남산골을 오른다. 오랜만에 오르는 오솔길이 한적하다. 동네 뒷동산처럼 나지막하고 한 시간이면 족히 다녀올 수 있어 산책 삼아 등산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던 곳이다.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떠들썩하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코로나 19’ 위력이 세긴 센가 보다. 발길 잦던 그 등산로에도 걷는 사람이 뜸하다.

휴교령에, 각종 강의도 중지 지침이 내려졌다. 모임도 피하고 가급적 집에 들어앉아 있으라 한다. 매일 나돌던 사람이 집에만 있으려니 금세 무력해진다. 여유 시간이 주어진 만큼 책 읽는 것과 글쓰기에 효과가 있어야하는데 외려 일이 안 된다. 애꿎은 TV채널만 돌린다. 하나같이 어둡고 불안한 소리다.

어린이집 휴원 기간이 길어지자, 맞벌이 부부의 고민이 심각하다. 시장에도 사람 발길이 뜸하다. 경기가 돌아가지 않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멀쩡한 사람을 만나도 전염병자 대하듯 비켜가며 흘끔흘끔 쳐다본다.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라 하니 마스크 값이 폭등하고, 그나마 사기도 어렵다. 마스크가 치료제라도 되는 양 사려는 사람이 꼬리를 문다. 늘어선 줄이 꼬불꼬불 똬리를 틀고 있다. 난리가 따로 없다. 마음이 우울해진다.

사람을 피해 바람을 쐬러 찾은 곳이 바로 남산골이다. 사람 대신 까치소리가 환영하듯 반긴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맑은 새소리도 들린다. 고요한 산길에 혼자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다. 소나무 군락지에 든다. 밟히는 마른 솔잎에선 아직도 솔향이 은은하다. 올려다보니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훤하다. 숲이 주는 평온에 빠져든다.

언덕배기 비탈길엔 지난여름 폭우에 뿌리 채 뽑힌 나무들이 반 정도 쓰러져 다른 나무에 걸쳐있다. 정리를 해 주지 않으면 살아있는 나무도 온전치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군데군데 고주박도 눈에 띈다. 다른 나무에 제 몸을 칭칭 감아올려 여름을 견뎌낸 넝쿨식물의 치열한 삶의 모습도 보인다.

숲이라고 늘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했겠는가. 이들도 호된 폭풍우를 치러내며 숲을 지켜온 게다. 여기저기 고된 삶의 흔적이 상흔으로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의연히 4계절의 변화에 적응해가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지 아니한가. 사람들에게 평온 주는 것은 바로 그 의연함, 제 속에서 내품는 긍정의 힘, 피톤치드 때문이리라.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 등에 저항하며 내뿜는 항균물질이다.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자가 면역의 기운이다. 피톤치드를 흡수하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다고 하여 사람들은 숲을 찾아 정신을 맑힌다. 맑은 정신은 긍정의 힘을 낳는다.

이제 막 망울을 터트리려 기를 끌어 올리는 개동백의 꽃눈이 대견하다. 허리한 번 툭툭 쳐주고 정상을 올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솔이 향기로 인사를 건네온다. 두 다리 뻗고 주저앉아 있는 운동기구들을 하나하나 돌며 몸을 풀어본다. 우울로 뭉쳐 있던 근육이 풀리고 기분이 맑아진다. 여기서는 마스크가 필요 없다. 편안하게 안아주는 나무에게서 여유를 느낀다. 긍정의 힘으로 내 안의 피톤치드를 스스로 만들며 이 난국을 이겨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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