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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싶다[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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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5  11: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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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세월이 하염없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벌써 봄은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아직 온몸으로 느낄 여유가 없다.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촌을 혼란스럽게 한다. 봄은 만인의 연인이라고 한다. 봄을 느끼고 맞이하는 방식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하다. 봄을 기다리고 있다면 봄은 이미 가슴속에 들어왔다. 강가에 서서 솟아나는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은 봄바람에 나부낀다. 봄비가 내리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2020년 초반 고단한 삶의 아픔을 날려버릴 수 있는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쳐 생명의 고동소리를 느끼고 싶은 시간이다.

코로나19 감염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이제 남의 처지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특히 대구 경북지역의 급격한 확진자 증가는 매우 심각하고 참담한 상황이다. 누구라도 예기치 못한 위기에 직면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우왕좌왕하다가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좌고우면하면서 적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최근 바이러스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이 이와 다름 아니다. 하룻밤 자고나면 확진자와 유증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바이러스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여 국민들은 하루하루 불안에 빠져 살고 있다.

최근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국가와 지역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 자국민의 안전을 명분으로 한국으로 지역화하는 전략을 펼치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 간 인심이 더욱 각박해졌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지구촌이라는 정감어린 표현이 외래어인 글로벌로 바뀌어 자주 등장하였다. 글로벌시대는 경제와 문화 교류가 전 세계를 무대로 이루어지는 시대를 의미한다. 현대는 한 나라가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원자재수급이 원활치 않아 세계적으로 완제품생산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엄청난 인구를 기반으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한 중국의 상황이 글로벌시장의 경제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외교의 기본원칙인 상호주의 입장에서 중국이 어려울 때 우리 정부가 취했던 조치들을 감안하면 사전협의가 없는 조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씁쓸하다.

요즘 국가나 사회 조직의 모든 행사들이 거의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행사를 주관하는 곳에서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문자를 많이 받았다. 자신들이 특별하게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연신 죄송하다는 문자를 반복하여 보내온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자녀의 결혼식을 취소한다거나 갑작스럽게 상(喪)을 당한 소식을 알리면서 가족 위주로 진행할 예정이니 양해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함께 전해오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마스크와 세정제로 어떻게든 달래볼 수 있지만 당장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긴급지원 대책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아직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는 것만큼 두려운 상황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올해 다섯 살 된 손자가 집에서 하루 종일 지내느라 무척 힘들어한다.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온 후 기대감으로 기분이 한껏 부풀었는데 바이러스 확산으로 휴업하게 되어 당분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할아버지 손을 붙잡으며 외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저녁에 일찍 돌아와서 놀아달라고 매달린다. 밖에서는 바이러스 감염 걱정에 시달리며 집에서는 가족들이 일찍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손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어제 일찍 귀가하여 손자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운동장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평상시 많은 사람들이 넘쳐났던 트랙에는 겨우 십여 명 정도 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재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손자와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함께 걸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땀을 흘리면서 즐겁게 뛰어다니는 손자의 모습에서 한편으로 의젓함과 애틋함을 동시에 느낀다.

겨우내 기다렸던 봄이 진즉 가까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 눈을 들어 떠오르는 붉은 해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한 송이 꽃봉오리가 방금 세수하고 나온 아이의 얼굴처럼 깨끗하고 순수하다. 비록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바이러스가 창궐한다고 해서 여기에서 그냥 멈출 수는 없다. 삶이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워서가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이 더 크고 깊기 때문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지만 사랑은 영혼을 꼼짝 못하게 동여맬 수 있다. 세상의 욕망 때문에 지금까지 스스로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꿈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몇 년 전 대구에서 근무할 때 맺은 소중한 인연들의 소식이 무척 궁금하다. 호흡을 느낄 만큼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 감싸 안으며 반갑게 손을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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