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김형일 성명학 박사

나는 누구인가. 타자(他者)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찾기 위해‘나’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기만의 시각으로 내면세계를 둘러본다. 보통은 삶의 경험을 통해 본질을 탐색하지만 자신의 업에 따라, 음악가는 선율로, 화가는 캠퍼스에 정신세계를 담는다.

그 예로,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에 누워있는 어린 아기부터 과일 따는 젊은이, 웅크리고 있는 늙은 여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탄생과 삶, 죽음을 표현하였다. 또한 1988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그림 작업했던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검은 까마귀, 세 갈래로 뻗은 밀밭 길 전경과 검푸른 하늘에 떠있는 시커먼 먹구름은 불안정한 심리를 암시하고 있다.

얼마 전 개명을 위해 방문한 30대 후반 여성분의 사주가 마치 고흐의 작품을 연상하게 하여, 그녀의 사주자화상을‘찬서리 내린 밀밭’이라고 지었다. 그녀는 대학 영문학과에 합격하여 입학하던 날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아온 부친(父親)이 의부(義父)라는 사실을 알고 과거 상습적으로 학대를 당했던 기억을 돼 세기며 충격을 받고 가출하면서 자퇴를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동갑 남성과 결혼했지만 몇 개월 후 이혼하였다.

그녀는 생계유지를 위해 접객부 생활을 시작하였고 외국으로 건너가 유사 직업에 종사하였다. 몇 년이 흘렀을까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과 동거를 하였고 그의 권유로 자신 명의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하였고 사기죄로 3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소하던 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싶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입하(立夏) 절기에 태어났다. 완연한 봄기운은 점차 퇴색하고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논에는 한참 자라는 어린 모 잎 사이사이로 잡초가 무성하고 개구리와 해충이 어우러져 무척 부산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녀의 자신 일간(日干)과 태어난 월지(月支) 진월(辰月)은 금오행(金五行)으로 둘러싸여 시골 들녘과 밀밭에 찬 서리를 맞은 풍경이다. 하늘은 회색빛 구름으로 가득 차있고, 푸르른 밀밭은 하얀 살얼음을 입혀 놓은 듯 바람에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서있었다. 또한 밀밭 길 주변 풀과 나무 등 자연만물은 이런 살기(殺氣)에 고개를 숙여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래서일까 시주(時柱)에 자리한 화오행(火五行)의 인성(印星), 즉 밝은 불꽃의 착한 심성은 외부 환경에 가려져 더욱 빛을 발하지 못했다.

며칠 후 작명서 잘 받았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한국을 벗어나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이라는 한시에 “서리에 물든 가을 단풍잎이 2월의 봄꽃보다 더 붉고 아름답다(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오이월화).”라는 구절처럼 산전수전(山戰水戰) 모진 풍파를 겪은 우리네 인생 이면에 숨겨진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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