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충청시평]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전염병의 창궐로 세계가 전시 상황이다. 인류가 물리쳐야 할 적은 형체도 없는 바이러스다. 비교적 청정한 나라들은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특히 환자가 많은 나라에 빗장을 걸었고 인적·물적 왕래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한 나라는 벌써 160개국에 이른다. 기업은 물론 자영업자와 개인들의 경제적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두 달 이상 계속되는 전염병 때문에 실시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남이 없어졌다.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은 4월로 연기되고 대학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여러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 내가 옮을까 남에게 옮겨줄까 하는 걱정에 서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자발적으로 대면을 피하고 있다. 일부 일탈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성숙된 시민 의식을 가지고 당국의 정책을 따르고 있다.

'마스크 5부제' 시행으로 마스크를 살 수는 있어도 여전히 사기는 어렵다. 1인당 2매씩 정해진 요일에만 살 수 있으니 가면 있으려니 하고 가도 허탕 치기가 일쑤라 시민들은 여전히 불편하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거나 판매 내용 입력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마스크 알리미' 앱에 표시된 잔고 수량을 보고가도 현장의 상황과 차이가 있다. 항의하는 시민에게 연신 사과해야 하는 약사는 죄인 아닌 죄인이다. 약국 입구에 빨간 글씨로 써 붙인 '마스크 품절, 그만 물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약사들의 피로감을 말해준다. 소비자도 약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니 이럴 때일수록 모두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미세먼지 때문에 종종 사용하긴 했지만 마스크를 사려는 긴 줄을 보면서 마스크의 소중함을 절절이 깨닫는다. 하찮게 생각한 물건이 이렇게 귀한 몸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봄이 되면 알아서 피는 꽃을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건만 바이러스가 봄마저 앗아 갔으니 상춘의 기쁨도 없어졌다. 아이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되던 층간 소음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외식이 줄어드니 식당 주인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식구들의 세 끼를 책임지는 주부들의 손길만 분주하다. 체육관이 휴관하니 우울한 마음에 몸마저 찌뿌둥하여 없던 불쾌감도 생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이 늘면서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특정 근무지의 집단 감염으로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근로자들의 노동 환경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역에 관한 고강도 업무에 시달린 공무원이 사망했다. 이렇게 무형의 바이러스가 준 스트레스로 모두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 평범해서 무료하다고 느낀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체감하고 있다.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수다 떨던 하찮은 일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지금에야 깨닫는다. 아직은 언제 끝날지 모를 깜깜한 터널 속이지만 모든 일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니 언젠가는 그 끝을 알리는 환한 빛이 나타난다. 내년 봄에는 힘들었던 올봄 이야기를 하면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뚫고 나온 매화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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