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자꾸만 움츠려든다. 코끝에 닿을 듯한 봄의 향기가 바람에 떠밀려 저만치 도망친다. 사람들의 얼굴이 새의 부리 같다. 무채색의 마스크로 가리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길게 서 있다. 겨우 보이는 눈빛마저 무채색이다.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면 네모난 무언가를 건넨다. 그리곤 다시 머리를 숙이고 손안에 든 작은 세계를 열어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느리게 움직인 다. 마치 손잡이를 돌리는 연필깎이 안으로 연필이 들어가는 것 같다. 한기에 머플러를 매만지며 나도 안으로 들어선다. 밖에서보다 아늑하고 따뜻하지만 적막하다. 역시 마스크를 쓰고 가운을 입은 이가 먼저 받아갔던 신분증과 마스크를 준다.

이 줄을 서면서 기도가 시작되었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갖은 분이길 원한다. 세상에 태어 나 처음 기도를 했던 것은 아마도 아버지가 폐암선고를 받았을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를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해달라 열네 살 소녀는 눈물로 밤을 새웠다. 다음은 어머니를 위한 기도였고 그 다음은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형제들을 위하여 진심을 다하였다. 소견 없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휴전국인 우리나라가 다시 전쟁의 지옥에 빠질 두려움에 두 손을 모았다.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 할 수 있는 저력과 건강한 정신을 잃지 않게 해 달라 하였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며 한사람도 빠짐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런 날들이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진다.

호주의 산불은 수개월째 이어지고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생한 메뚜기 떼가 국경을 초월한 대재앙으로 번지고 있다. 약 일 천 만 명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답을 찾을 수 없어 기도가 시작되었다.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신음처럼 나온다. 옆 사람에게 들킬세라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이내 부끄러움을 잊어버린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다.

(마스크를 벗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악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마음껏 산책을 하고 어린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 놀며 학생들은 학업에 충실하고 젊은이들은 열심히 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미욱한 저희는 선물 받은 천지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그곳에서 생성하는 모든 것을 당연한줄 알았습니다. 함부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주신 것을 아끼며 지내다가 돌아가는 날 후세에 돌려주겠습니다. 아직까지 누렸던 만큼의 삶은 아닐지라도 사람답게 살게 해 주세요. 당신이 내린 이 형벌을 힘을 모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저희가 되게 하소서. 제 기도가 당신에게 닿아 인류를 긍휼히 여기시어 거친 바람을 거두고 따뜻한 햇볕을 내려주신다면 당신의 축복을 맨발로 한달음에 달려 나가 기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회색도시의 전깃줄에 앉은 제비들처럼 마냥 웅크린 사람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알몸으로 겨울을 견딘 나뭇가지에 연둣빛이 올라온다. 기도의 응답은 아닐까. 마음이 앞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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