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허! 이릏게 답답할 수가. 내가 시방 나 좋다고 들례 집에서 사는 줄 아능가 보지?"

"지가 시방 하고 있는 말은 언지까지나 우리 귀한 아들 기를 죽일 거냐 이거유. 당장 둥구나무 밑에만 가 봐도 지 또래는 다 애비가 있는데, 우리 승철이는 애비가 읎는 것도 아닌데 애비가 읎는 자식처럼 맨날 멀뚱하게 서 있잖유. 그런 판국이니 아 가 기가 살아 날 이유가 읎잖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먼. 나는 머 승철이가 맨날 골골 거리믄 좋아 하는 줄 아능가 보지? 나도 승철이가 골골거리믄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이여. 하지만 워틱햐. 사람의 정이라는 거시 칼로 두부를 짜르듯 그릏게 쉽게 정리를 할 수 있는 벱이 못되잖여. 더구나 나는 정부의 녹을 먹고 사는 공무원 신분이여. 시방은 부면장에 불과하지만 난중에는 아부지처럼 면장도 되고 군수도 될 사람이란 말여. 이런 판국에 들례 그것이 혹여 나쁜 맘이라도 먹고 도청에 투서래도 했다가는 그 날로 모가란 말여. 내가 모가지를 당하믄 결국 그 피해는 누가 보능겨. 쉽게 생각하믄 아부지처럼 그냥 농사만 짐서 살아도 그만이지만 난 절대 아니오여. 우리 승철이를 위해서도 크게 성공해야 할 사람이라 이거여. 비단 승철이뿐만 아니라, 내가 높은 자리에 앉아야만 우리 딸들도 명망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갈 수 있다 이거여. 이쯤 말하믄 내가 지금까지 들례를 멀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 할 수 있겄지."

"당신 말은 들례가 당신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당신이 먼첨 들례를 버릴 수는 없다는 말로 들리느만유."

"허허!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왜 이릏게 답답할까. 사람 속을 빨래처럼 뒤집어 뵐 수도 읎고 환장하겄구먼. 이봐, 조선시대나 왜정시대나 시방이나 변하지 않은 기 딱 한가지 있어. 그기 먼지 알어? 빽이여, 빽! 육이오 때 군인들이 공산당 총에 맞아 죽으믄서 머라고 하믄서 죽었는지 알어. 빽! 하고 죽었다는 거여. 왜냐하믄 빽이 읎는 사람들만 죄다 최전방으로 갔기 때문이여. 우리 승철이가 난중에 컸을 때 또 전쟁이 나지 말라는 벱이 읎잖여. 그 때 우리 승철이를 빽! 하고 죽게 만들지 않을라믄 내가 성공을 해야 한다 이거여. 내가 성공을 할라믄 그 머셔, 들례 같은 년이 군청이나 도청에 가서 헛소리를 지껄이게 만들믄 안된다 이거지. 이만하믄 내가 시방 먼말을 하고 있는 지 알아 들었겄지?"

이동하는 옥천댁이 어떤 식으로 말을 해도 정당화 시킬 자신이 있었다. 어린 승철이 누워서 자고 있는데도 담배연기를 뻑뻑 내뿜으면서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옥천댁을 노려보았다.

"긴 말 하지 않겄슈. 당신이 장한 일을 하면 대전에 있는 딸들이 박수를 치며 반가워 할 거고, 당신이 집안일에 소흘이 하면 갸 들한테도 안 좋아유. 그 쯤만 망하고 당신 양심만 믿고 있겄슈. 그라고 한 가지만 분명히 말해 두겄슈."

"난도 애자하고, 말자, 영자를 끔찍이 생각하고 있구먼. 내가 갸 들을 끔찍이 생각하지 않으믄 비싼 돈 들여서 대전으로 유학을 보냈겠어. 쓸데읎이 나를 나쁜 아부지로 맨들지 말고 당신이나 말을 조심햐."

"당신이 딸내미들을 위하고 안 위해줬는지는 시방 단정을 지을 수 읎고 세월이 말해주겠쥬.

옥천댁은 이동하의 마음을 설득으로 바꿀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럴 바에는 입을 다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계속 말을 하다보면 피차 감정만 상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험한 말도 튀어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병약한 승철이에게 부정이 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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