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표현'

대학 기초교양 '사고와 표현'에서 학생들은 여러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한다. 시험도 중간·기말고사로 축적된 지식을 점검하는 대신, 그때그때 수업이나 과제로 쓴 글들을 모아 평가한다.

한 학기 동안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담은 정서적인 글쓰기와 요약이나 주장을 펼치는 논리적인 글쓰기 등 다양한 글을 써보는데, 특히 정서적인 글쓰기는 정형화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율적인 사고를 존중하는 것은 좋은데, 주관적인 생각을 계량화하기가 어렵고, 평가에 다분히 교수의 주관도 개입될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채점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수업은 학생들의 개성과 자율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데 그것은 전공을 포함한 대학교육 전반이 실용과 기능을 지향해가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적어도 기초교양만큼은 학생들로 하여금 인성을 가꾸고 사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갈 수 있게 도와 기능과 실용교육을 보완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쓴 진솔한 글쓰기를 읽노라면 글의 신선한 감동에 젖어 들 때도 있다. 한 학생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게 돼 수업시간에 글을 못 쓰게 됐다. 평소 글을 제때 못 낸 학생들에게 나중에라도 제출해서 점수를 보완하도록 당부하는데, 이 학생도 퇴원한 뒤 못쓴 글을 써서 보완하고 싶다고 부탁해 글을 쓰게 해줬다. 그때 학생이 즉석에서 써준 짤막한 글이 내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겨 여기 옮긴다.

"말은 참 중요하다. 그래서 옛날부터 말과 관련된 속담도 많이 내려오고 있다. 나는 말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에서 나오는 말과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 그리고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다. 남들이 나를 부를 때 대답하거나 깜짝 놀라서 '엄마'하고 소리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말들은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이고, 남을 속이는 거짓말, 그리고 그냥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인데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말이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직 마음에서만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사람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말이 마음으로 전달되는 말이다"

이 글이 구분한 기준이나 예들이 과연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조금도 설득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어조로 우리가 평소 내뱉는 말의 가치를 성찰하게 하고, 말하는 마음가짐을 가다듬게 해주는 이 글의 온유한 힘에서 바로 삶을 변화시키는 사고와 표현으로서의 글쓰기의 가치가 느껴진다. 내가 쏟아낸 수많은 말들 중에 정말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얼마나 될까.

장영희 교수는 학생들의 글을 읽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훔쳐보는 것이라 했다.

그들의 글을 채점하는 것은 그 영혼에 비친 내 영혼의 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으로 전달되는 말', 아직 기운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눈이 맑게 빛나던 우리 학생에게서 배운 이번 학기 귀한 수업이다.

▲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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