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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정우천 입시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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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1  14: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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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민족시인 이상화가 1926년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마지막 구절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암담한 현실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봄이 왔음을 비탄에 젖은 마음으로 노래한 시다. 춥고 어두운 겨울을 견딘 후 화려한 꽃을 피우며 산과 들은 아름다워졌지만 봄 같지 않게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던 시인처럼, 요즈음의 우리 심정이 그렇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는 아니지만, 바이러스에 봄을 빼앗긴 꽃피는 거리와 싱그런 계절에 드리운 우울한 그림자가 그렇다. 코로나 19의 확산 우려로 여러 곳의 봄꽃축제가 취소되고, 봄꽃명소로 상춘객이 붐비던 곳도 폐쇄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계절은 인간의 기분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피고 싹이 돋는다. 길가 보도블록 작은 틈, 그 척박한 환경에서 노랗게 꽃피우는 민들레도 애틋하고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의 화려함도 눈물겹다.

주식시장에는 프로그램매매라는 거래 방식이 있다. 사람의 판단으로 하는 주식매매는 시장의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적 약점으로 인해 불합리한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그래서 기관 등 대형 투자자들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매도 또는 매수 주문을 내도록 설정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이루어지는 거래 방식을 쓴다. 입력된 조건이 충족되면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주식시장의 프로그램매매처럼 자연은 자신의 일정대로 세상을 바꾼다.

인간의 감정이나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해진 일정대로 꽃피우고 새잎을 틔운다. 그저 인간만이 자신의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할 뿐이다. 어쩌면 감정을 배제한 이런 프로그램에 의한 움직임이 지나친 공포나 희로애락에 휘둘리는 인간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위기상황에서 인간은 실제의 현실보다 자신이 해석한 현실의 모습에 더 영향받고, 실제로 닥친 위기보다 그 위기에 대한 공포감으로 망가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라크전 종전 후인 2012년 미국 국방성의 조사에 의하면, 자살한 군인 수가 전쟁 중 전사한 병사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실재하는 위험보다 공포라는 감정이 인간에게는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속에 젊은 층을 위협하는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romstrom)이란 반응이 있다. 침입한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면역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정상적인 세포까지 공격하는 현상이다. 과도한 공포에 의한 자기 파괴나, 과잉 자가 면역 반응이나 다를 게 없다.

활줄을 늘 팽팽하게 당겨놓으면 유사시에 오히려 좋은 무기로 쓸 수가 없다. 평상시에는 활시위를 풀어놓아야 전쟁 시에 탄력을 유지한 좋은 화살을 쏠 수 있는 법이다.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지만 늘 팽팽한 긴장 상태로는 견딜 수 없는 게 또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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