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헬스장이 문을 닫아 집 근처 가로공원에서 가끔 걷고 달린다.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하다가 아침에 갑자기 달리기를 한 탓에 무릎과 골반 부위가 뻐근하다. 실내에서 운동하던 습관이 들어서인지 이제 밖에 나가 운동하는 일이 조금 낯설다. 습관이나 관행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공원 산책로 주변에 피어난 산수유와 매화꽃이 점점 시들어가고 그 자리를 진달래꽃 개나리꽃 벚꽃이 절정의 화려함을 뽐내며 주위를 아름답게 치장한다. 이제 주변 공원이나 한강에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실상 모든 시간이 순식간에 정지되었고 삶의 일상이 사라졌다. 당연히 보고 싶고 만나야할 사람들조차 쉽게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인연들과 가슴을 꼭 끌어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조만간 다시 올 수 있을까.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소하게 설레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한줄기 빛조차 없는 캄캄한 밤에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읽는 순간 가슴에 와 닿는 한 구절에 감동한다든지, 문득 낯선 도시에 여행을 떠나 높은 빌딩을 올려다보는 순간 경이로움에 감탄한다든지, 유연한 손놀림으로 연주하듯 연기하는 중후한 매력을 풍기는 배우의 다정한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설렘이 다가온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에서 감출 수 없는 설렘이 가득 차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상상하지도 못한 사랑에 빠져 스스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봄날에 신부는 흩날리는 꽃잎처럼 우아하고 화려하다. 아름다운 신부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싶다. 요즘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 주말 외출을 자제하고 모처럼 한가로이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감상하였다. 영화 말미에 목사인 아버지는 몸이 나빠져서 마지막 설교를 한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주인공은 가족과 함께 했던 강에서 추억을 회상한다. 변함없는 강물을 배경으로 낚시하는 모습이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강이 된다.

강물은 거대한 바위들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며 깊어지고 장애물을 안고 돌아가는 곳의 포말 속에 커다란 물고기가 산다. 물살이 느려지고 위쪽의 여울에서 밀려 내려온 모래와 자갈들이 강바닥에 다져지기 시작하면서 강물은 얕고 잔잔해진다. 다지는 일이 끝나면 다시 세차게 강이 흐른다. 물살이 세지다가 잠잠해지고 나무를 만나고 바위를 만나 방향을 바꾼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과정 중 지극히 소소한 일부분일 뿐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된다. 삶이 곧 흐르는 강물 같다는 진리를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닫는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일상에서 힘들고 지칠 때 집에 돌아와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밖에서는 멋있고 센스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하지만 집에서는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편안하게 주저앉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사랑의 설렘은 언젠가는 사라진다고 가정한다면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결국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일선 현장에서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신 훔쳐내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지친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는 이탈리아어로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라는 뜻이다. 미켈란젤로가 87세 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스케치북 한쪽에 적은 글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다.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남녀노소 등의 구별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과 공생과 공존이 결국 상생의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

또한 가장 큰 바이러스는 사스도 코로나도 아닌 마음을 늙고 병들게 하는 절망의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았다. 봄은 생명이 태동하는 계절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목숨을 바쳐 피어났기 때문이다. 하찮은 미물이나 공중의 새도 마찬가지다.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소중하게 여겨야할 것일 뿐 결과물인 꽃이 전부가 아니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더 이상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인생의 허들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파도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웃어야만 이길 수 있다. 기적은 정말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비로소 일상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 사월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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