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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자혜, 운명적인 만남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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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2  17: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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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한창 전쟁 중이다. 세계 전역으로 교전 범위가 넓어지고, 사망자는 계속 늘어난다. 싸울 상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어디다 대고 총질을 할 수도 없다. 그저 입을 틀어막고 연신 두 손을 싹싹 비벼 씻어내는 게 상책이란다. 벌써 3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꽁꽁 얼었던 땅에 햇살이 눈부시게 밝다. 매화, 산수유에 이어 목련도 우아한 꽃잎을 열기 시작했다. 완연한 봄이다. 푸릇푸릇 잎을 틔우고 있다. 희망이 솟아나는 거다.

100여 년 전, 그때도 그랬으리라.

검푸르던 북경의 하늘빛도 나날이 옅어지고 만화방초가 음산한 북국의 산과 들을 장식해 주는 봄, 4월이었습니다.// 나는 연경대학에 재학 중이고 당신은 무슨 일로 상해에서 북경으로 오셨는지 모르나 어쨌든 나와 당신은 한 평생을 같이 하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신 님 단재의 영전에’ 올린 미망인 박자혜 여사의 글 일부이다.

24세 박자혜 여사와 39세의 신채호 선생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국땅 북경에서 이렇게 시작되었다. 1895년 12월 경기도에서 태어난 박자혜 여사는 조선의 아기나인이었다. 궁중생활을 하던 중 1910년 궁내부 인력 해직으로 궁녀 신분을 벗고 숙명여학교에 입학해 근대교육을 받는다. 졸업 후 사립 조산부양성소를 거쳐, 조선총독부의원 간호부로 취업을 한다.

1919년, 삼일만세 운동으로 피 흘리며 죽어가는 부상병들을 치료하면서 남다른 각오를 하게 된다. 함께 근무하는 간호사들을 모아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간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중 체포되었다 풀려나 만주로 건너갔다.

지인의 도움으로 1919년 북경의 연변대학 의예과 입학한 그녀는 1920년 봄,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여사의 소개로 단재 선생을 만난다. 조국 독립을 염원하는 운명적인 결합이었다. 이듬해 첫아들 수범을 출산하고, 1922년 둘째를 임신한 채 경제적 어려움으로 귀국을 한다. 24세의 아내가 남편과 함께 산 기간은 고작 2년이었다.

남편 신채호는 의열단 활동 등 국외에서 독립운동에만 전념하였고, 그녀는 인사동에서 ‘박자혜 산파’를 열고, 독립군 연락임무,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사건 지원 등 국내의 독립 활동을 담당하며 고초를 겪는다.

1928년 체포된 신채호 선생은 1936년 2월 여순 감옥에서 순국을 했고, 그녀 역시 1943년 10월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현재 고두미 마을 단재 선생의 묘소에 위패가 함께 안치되었고, 1990년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황실의 아기나인으로 시작된 그녀의 삶은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조국을 위한 독립운동가로서 당당했다. 어려운 시기에 좀 더 쉬운 길을 걸을 수 있는 여건을 접고 이렇듯 역사적 고난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받은 여인, 박자혜. 그녀가 남편 신채호 선생을 만났던 그 4월 앞에 서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워내듯 따스한 온정이 흐른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하고 한마음으로 뭉치는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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