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서리태만한 크기의 딱정이가 군실거린다. 아침저녁으로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지만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날 새벽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남편이 볼륨을 낮춘 채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다. 아직 한밤중이라 했다. 비몽사몽간에 침대로 들어서려던 찰나 정강이에 불이 나는 통증을 느꼈다. 프레임에 부딪힌 것이다. 어찌나 아픈지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주저앉아 있다가 겨우 불을 켜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상처 난 다리를 이불 밖으로 내어놓고 누워있다 깜박 잠이 들었다.

아침에 상처를 살피자 다행히 살짝 벗겨지기만 했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랐다. 문제는 그 다음 날 부터다. 빨갛게 부풀어 오르더니 겉은 딱딱하고 통증이 심해 만질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까맣게 죽은 피부 주위로 농증이 생겼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바짝 긴장했었다. 더구나 군에 있는 큰아이 뒤로 작은아이마저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러니 어미로서 노루잠을 잘 수밖에 없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다. 대범한척 했지만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보다.

유년 시절, 숙부가 일요일이 되면 경운기를 태워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손꼽아 기다렸지만 피곤하다며 누워계셨다. 두 살 터울의 사촌오빠와 호기심에 시동을 걸어보았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피대를 잡아 당겨 보라 했고 그만 새끼손가락이 피대에 끼고 말았다. 비명 소리에 집안 어른들이 모두 뛰어 나오고 숙부가 반대 방향으로 손잡이를 돌려 으스러진 손가락을 빼내었다. 반세기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울며 누워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그 손가락은 살짝 삐뚤고 흉터도 남아 있다. 몸에 난 것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마음의 상처는 어떠할까. 옹이가 져 단단해진 것 같지만 깊숙한 곳 어디쯤에서 용암처럼 한번 씩 불뚝불뚝 솟구친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방면으로 완벽할 수 없고 어찌하다보면 한쪽으로 무게가 실리게 된다. 나의 삶속에서는 경제 활동에 치중했던 같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부분이 죄의식으로 남아있다. 조금 더 집중했더라면 미래의 삶의 질이 달라졌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 속에는 내가 놓쳐버린 것을 아이들을 통해 이루어 내려 했던 이기심마저 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로 인해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저희들의 부모라서 고맙고 자신들의 선택을 믿고 의지처가 되어주어 든든하단다. 그런 마음이 처음부터 생겨 난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낸 상처도 있을 터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주기도 했으며 받기도 했으리라. 그것을 상처로만 남기지 않고 옹이처럼 살갗에 툭 튀어 나온 흉터로 남겼을 것이다. 스스로 다독여 나이테로 훈장처럼 가슴에 안았지 싶다. 아이들을 통해서도 배우게 된다. 정강이에 난 작은 상처가 흉터로 남을 때까지 삶을 돌아본다. 모든 것을 흉터로만 보지 않으며 성장의 양분으로 받아들이고 꽃을 피우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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