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옛길을 에둘러 다니다가 5일 장이 열리는 곳에 가게 되었다. 장사를 위해 좌판을 펼치고 있는 상인은 마수걸이 손님이라고 가는 곳마다 반겨주었다. 잡화상 아주머니는 펄펄 끓는 물로 꿀맛 같은 커피를 타 주고 훤하게 생긴 청년은 마음껏 강정 맛을 보라고 권했다. 덕분에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좋은 손가락 없는 장갑과 들깨강정 한 보따리를 샀다.

출출한 속을 달래줄 어묵도 사 먹었다. 값싸고 싱싱한 움파는 들고 다니기 번거로워 망설이다가 친정어머니가 생각나 기어코 샀다.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출사였다.

상인들도 오랜만에 장을 열었다며 신명이 났다. 돈보다 장꾼으로 지내지 못해 더 답답했다는 그들의 말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는 말로 들렸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겼던 곳이라 장이 서는 것을 금지했는데 공과금이며, 대출이자 등의 납기일은 꼬박 찾아왔을 것이다.

시국이 이렇지 않았다면 청주 예총이 주관하는 제17회 예술제도 벚꽃의 만개처럼 어김없이 열렸을 것이다. 시민은 꽃구경을 빌미 삼아 예술제 삼매경에 빠졌을 테고 분분히 내리는 꽃비를 맞으며 귀 뒤에 꽃 몇 송이쯤 꼽아보는 행복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소소한 행복은 올해만큼은 참아야 한다.

청주의 봄은 무심천에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 휑하던 무심천은 사람 소리로 정겨워진다. 인근에서 15년 동안 살았던 힘도 이곳에서 나왔고 굳이 아랫녘으로 꽃놀이를 나서려고 애쓰지 않았던 이유도 가까이에서도 충분히 춘심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충청북도 도청과 청주시청,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매일 보내는 안전안내 문자가 밋밋할 무렵 두 번 세 번 보게 만드는 문자가 온 적이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합시다. 특히, 올해 벚꽃 구경은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였다.

참아 달란다. 그렇지 않아도 잘 참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생필품을 사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 산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충만하고 원한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으니 견딜 만하다. 운전하며 슬쩍슬쩍 곁눈질 꽃구경을 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저절로 끌리는 시선을 어찌 말리랴.

총선을 앞두고 아무 말 대잔치가 또 열렸다. 이 봄, 가장 참기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닌데 그렇단다. 상식선에서 다시 생각해봐도 번연히 거짓인데 참이라고 우긴다. 아쉬울 때마다 넙죽 엎드려 잘못했다고 빌지를 않나, 차도를 차지하고 뛰면서도 아무 말은 멈추지 않는다. ‘n번 방 호기심’, ‘키 작은 사람은 들지 못하는 비례 투표용지’ 등의 아무 말은 또 어떤가.

‘카도 아키오의 거짓말 심리 백서’는 6가지로 거짓말의 유형을 가른다. 친절함의 탈을 쓴 거짓말, 체면유지용 거짓말, 생색내기용 거짓말, 획일화를 강요하는 거짓말, 교훈이란 이름의 무책임한 거짓말, 책임 회피용 거짓말이 그것인데 총 6가지를 버무린 거짓말의 난무가 어지러운 세상이라 가르고 말고 할 것도 없겠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고 한다. 머리가 좋아야 잘하게 된다는데 거짓말에 관한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엄청난 거짓말은 땅 위의 큰 물고기처럼 저절로 죽어 가는 것이다. 펄떡거리고, 뛰고, 큰 법석을 떨겠지만, 결코 너를 해치지는 못한다. 너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라. 그러면 그것은 저절로 죽는다,”

이 말은 거짓말과 죽음을 한 선상에 놓고 있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있겠다. 살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거짓은 참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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