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광장은 철학자들로 북적였다. 일반 시민(현대의 시민과 분명 다르지만) 들은 철학자들과 심도 깊은 혹은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적수준을 가졌다. 광장은 이들에게 공간적으로, 심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분출할 수있는 장이 되어주었다.

정보화가 어느 나라보다 빠른 우리에게 인터넷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새로운 토론문화를 선물하고 있다. 과거 우리에게 토론문화가 과연 존재했는가 묻고 싶다. 대부분 획일화된 교육 속에 논쟁은 딴죽걸기나 왕따되기 십상인 거추장스런 것에 불과했었다. 특히 익명을 선호하는 회피성 문화는 토론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은 한국의 토론문화에 단비와 같은 선물이었다. 이제는 인터넷 토론문화는 당연시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최근의 '미네르바사건'에서 보듯이 익명의 인터넷문화를 문제삼아 '인터넷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 등 인터넷토론을 이끌어낸 가장 큰 원동력인 익명성에 법의 제갈을 물리려는 움직임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익명의 인터넷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이용자들의 직접적인 여론을 형성하며, 엄청난 창의력을 탄생시키는 무한공간이다. 익명의 환경이라야 bric(황우석 논문 조작 사실을 밝혀내는 데 핵심역할을 한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경우처럼 전문가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하다. 이것은 '비겁함'과는 다른 것이다.

현직 판사가 정부와 한나라당이 발의한 '사이버 모욕죄' 를 두고 공개적인 비판글을 올렸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사이버 모욕 행위에 가중처벌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사이버 모욕죄' 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고법 민사10부 이종광 판사가 1일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사이버 모욕행위의 규제'라는 논문을 올려 "사이버상의 표현에 국가 형벌권을 확대하는 것은 공동체의 관심사에 대한 시민들의 발언을 억제할 것"이라고 정면 비판했다.이 판사는 논문에서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수사할 수 있는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하는 것은 국가형벌권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며 "가장 참여적이고 표현 촉진적인 매체에서의 의사표현에 대해 '질서 위주의 사고'를 할 경우 표현의 자유 발전에 큰 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2001년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 명예훼손이라는 강한 처벌 조항이 신설됐지만, 그 뒤로도 인터넷에서의 명예훼손은 2003년 4991건에서 2007년 1만2905건으로 크게 늘었다"며 사이버 모욕죄 신설에 따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 사회는 공동체에 커다란 심리적 충격을 준 범행이 있는 경우 사회·문화적 요인을 탐구하지 않고, 즉각 강력한 처벌 법규를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입법 동기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이 있음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사표출의 자유는 오랫동안 자유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토론은 일부에서 공권력을 피해 행해진 학습활동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의 진전과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토론문화는 새로운 장을 열게되었다. 인터넷게시판은 인터넷에 접근 가능한 전국의 남녀노소가 누리꾼으로 동등하게 자유발언을 하는 광장이다. 포털사이트나 언론사의 게시판에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화두가 던져지기만 하면 누리꾼들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는 휘모리 장단이 된다. 특히 시·공간적 제약 없이 사회적 의제에 대한 토론장이 형성될 수 있는 인터넷에서의 의사소통을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며 다양한 소통으로 인터넷토론이 닫힌 사회를 열린 사회로 바꾸는데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한다.

▲ 김용수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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