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 시인

[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 시인

다시 오지 않을 오늘, 또 하루를 떠나보내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행스럽게도 밤늦게 무심천에 가는 것으로 위안을 얻고 있다. 시내가 멀어질수록 아스라이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도 아름답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낭랑한 소리내며 달려가는 물의 형상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 금강을 향하여 멈춤없이 흘러가는 물소리는 이리저리 맺힌 마음을 싣고 아픔을 마다하지 않기에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또 하나 밤늦게 무심천에 가는 것은 밤하늘의 별을 조용히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에 가려 낮에 보이지 않던 먼 먼 별들이 손짓하며 반짝이고 있음이 무한 신비스럽기에 그저 겸허해진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별을 볼 수 없다면 짧은 일생이나마 어찌 살아갈까? 한국의 ‘소나기’ 같은 순정 소설이라고 할까? ‘별’로 알려진 알퐁스 도데도 별에 의지하고 산 것 같다.

가난한 목동과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의 플라토닉 러브를 그려냈지만 그의 일생은 경제적으로나 여인들과의 사랑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별을 사랑했을까? ‘별’의 주인공 목동을 통하여 아가씨에게 유성, 은하수도 가르쳐주었고 시계노릇을 해 주는 오리온, 별들도 결혼을 한다는 마글론 등 나름 별나라에 심취해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빗발처럼 쏟아지는 별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덜컥 무슨 생각에 닿을까? 도데는 하느님이 당신 나라에 들여놓지 않는 영혼들이라고 별 밖의 영혼을 염려하기도 한다. “저 숱한 별들 중에서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하나가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 고 지순한 사랑의 결정체를 별들에게 얹고 있다.

알퐁스 도데처럼 예순 즈음 일찍 하늘로 간 어느 시인도 ‘별을 보며’라는 시에서 별에게 생명력과 사랑을 건네고 있다.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하략)

우리는 슬프거나 아프거나 외로울 때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나도 시인처럼 나 때문에 별이 더럽혀지지 않을까 염려한 적도 없지 않다. 수증기가 모여서 구름이 되고 구름 속에서 빗방울이 만들어지듯, 별은 수소가 많이 모여있는 별구름 속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이어서 수소를 연료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빛을 내고 점점 어른 별로 변해가야 한다.

내일이면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막바지이다. 수많은 후보들이 이름하여 별이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자신만이 별이 될 수 있다고 막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꽃인 국회의사당에 입성, 별이 된다는 것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별도 아기별로 태어나 스스로 빛을 내다 늙은 별이 되고, 어느 때인가 죽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유권자도 지역구민을 위해 밤마다 빛날 수 있는 별을 잘 선택해야 한다. 아흔 넷 어머니, 마지막 투표가 될 수도 있는데 몇 번을 찍어야 하는가 물으신다. 곁의 어머니가 내겐 아직 별님인 것이 감사하다.

생명의 등불을 밝혀드는 4월! 우리는 서로에게 별이 되고 싶다. 코로나 19로 주변이 암울할지라도 어쩌면 나부터 별이 되는 것을 꿈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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