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아주 오래 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밥 아저씨’라고 불리던 분이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밥 로스로 알려진 그는 풍성한 파마머리를 하고서는 커다란 페인트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참 신기한 것은 커다란 페인트 붓을 물감에 콕콕 찍어서 쓱싹쓱싹 그림을 그리면 금세 산이며 나무며 아름다운 풍경이 완성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웻 온 웻’(wet-on-wet)이라고 알려진 그의 기법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신기한 방법이었다.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무 생각이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아무 색이나 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풍경을 그대로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림을 완성하면 밥 아저씨는 꼭 이렇게 말하곤 했다. “참 쉽죠?”

그 모습을 보면서 들은 생각이 있다. ‘저 사람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저 도화지에서 완성된 그림을 이미 보고 있구나!’ 우리는 때로 우리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우 실망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참으로 앞이 막막하다고 말한다.

특히나 요즘 같이 신종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특별한 상황에서는 이전에 경험했던 모든 배움과 지식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가들이 하얀 도화지 위에 이미 완성된 모습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만약 우리도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해 이미 완성된 모습을 분명하게 그릴 수 있다면 오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더 쉽지 않을까?

밥 아저씨가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에게 ‘참 쉽죠?’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이 그림이 그렇게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먼저 도화지 위에 그릴 그림을 머릿속에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면 막상 눈으로 보이게 참 어려워보이는 이런 그림도 사실은 참 쉽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라보면서 오늘이 가져다 줄 내일을 막연히 기다리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오늘은 어떤 내일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인가? 모든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아무리 예측을 해 보아도 막상 내일이 되면 우리가 예상한 것들 중에 반드시 허점이 생기고 또 실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과 같이 참으로 큰 문제를 겪는 순간에는 내일을 예측하는 일이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저 오늘이 만들어주는 내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내일의 모습을 미리 그리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저 주어지는 내일을 수동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활용하여 내가 바라는 내일의 모습을 만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럼 미래는 더 이상 예측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자신이 분명한 내일의 모습을 그리며 만들어 간다면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는 일이 지금보다는 더욱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다가온 환난을 이기는 방법은 그 환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질병이 창궐하는 지금 온 나라의 경제가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질병의 확산을 막고 감염자를 치료하는 것은 개개인의 업무라기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대응해야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권고를 따르며 사회적 혼란을 막고 우리 자신의 일상의 삶을 지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이다. 그리고 그 임무를 감당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그리며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소망을 품는 것이다.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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