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월요일 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성당 정문 앞 작은 정원에 목련꽃나무 한 그루가 있다. 입을 꼭 다문 채 터질 듯이 탱탱하게만 느껴지던 꽃봉오리들이 곱게 물든 달빛에 물들어 그것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룻밤 사이에 활짝 피어 봄 4월의 소식을 전해준다. 눈보라와 찬바람을 견디며 단아하면서도 화사한 색조의 꽃을 피우는 봄꽃의 귀족. 잎새 하나 없는 유백색의 하얀 꽃내음이 봄바람 결에 나를 살포시 감싸 안으면 나는 어느새 그 향기에 취해 잊고 있었던 ‘옛사랑’의 실없는 기억에 젖어든다.

사람들은 흔히들 지나간 사랑을 말할 때, 그 사랑은 이미 엎질러진 와인과도 같아서 유리잔 속에 채울 수 없는 것처럼 단호하게 ‘옛사랑’이란 과거형으로 뇌까린다. 좋았던 순간들만을 편집하여 추억으로 미화했을 무렵엔 굳이 연락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랑은 우리들 안에 스스로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을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만큼 우리를 특별하도록 달라지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오롯이 이별 노래만 귀에 들려온단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이라는 말과 함께 눈물, 이별, 끝나다, 떠나다, 울다 등의 슬픔에 관련된 노랫말의 멜로디가 모두 자기 자신의 이야기인양 느껴지는 까닭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나간 사랑을 읊조린 슬픈 노래들, 가수 양희은씨가 유언처럼 써 내려간 하얀 목련의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라는 시어와 같은 노랫말 그리고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 이란 노래의 “텅 빈 하늘 밑 불빛들 꺼져 가면 /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등의 가사들은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봄으로써 마음이 시리고 아플 때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함에 지금 슬픈 건 슬픈 노래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하나의 자구책으로써 우리를 치유해주며 안정을 되찾아 주는지도 모른다.

옛사랑을 추억할 때, 우리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랑을 ‘그대’ 또는 ‘그’로 명명한다. 이유는 굳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풀지 않은 채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기에 이미 지나갔음에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물어봐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사랑은 언제나 과거 속에 파묻혀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 감정은 언제나 모두 다 거짓인양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그런고로 사랑은 과거의 회상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울러 사랑이 과거에 속한다는 이유가 우리들로 하여금 사랑을 계속하게 부추긴다. 결국 사랑이란 수많은 사람 중에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사랑하는 이가 내 앞에 있을 때 그는 내가 예전에 알았던 사랑과는 다른 지금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과거가 새겨지는 사랑, 그렇게 사랑은 옛사랑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창조하면서 사람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든 사랑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봄이 무르익기 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옛사랑에 대한 노래가 움트기 시작했고, 목월 시인은 ‘4월의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라고 노래했다. 그래서 ‘부활과 고귀함’ 이라는 꽃말은 간직한 봄의 전령 눈이 하얀 목련을 소재로 한 많은 시와 노래들이 있나보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일상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지 오랜 시간이 지나가고 있으며, ‘그날이 그날’ 같았던 소소한 날들마저도 몹시 그리운 때이다. 그렇지만,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 눈부시게 하얀 목련꽃 그늘 아래서 ‘4월의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며 우리 모두 ‘사랑의 편지’를 기다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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