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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간다이향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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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9  17: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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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큰아이의 기억까지 통증으로 느껴진다. 두 번째라 느슨할 것이라는 것은 위로의 말이다.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맴돌아 멍하니 차창 밖만 내다본다. 어릴 적 보냈던 해병대캠프처럼 며칠 다녀오는 것이면 오죽이나 좋을까. 아들은 부대 앞까지 배웅해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잘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손을 놓고 싶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부모는 부대 안으로 들어 갈수 없다. 열을 재고 군용 마스크로 바꾸어 쓰는 뒷모습은 의젓해 보였지만 왠지 안쓰러웠다.

대한민국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혜택이 있다. 그만큼 의무도 따라간다. 그 중 하나가 ‘국방의 의무’이다. 아들 둘을 낳은 우리부부는 두 번의 별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큰아이는 이미 해군으로 복무중이고 이번에는 작은아이를 보낸다. 날이 정해지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널뛰었다. 당연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어찌하여 아들만 둘을 낳았을까 하며 낙담을 했다. 괜시리 미안해지기도 했다. 시시때때로 눈물이 나기도 하고 큰아이에게서 소식이오면 작은아이 걱정에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위로 차 연락이 오면 덤덤한척했지만 눈물부터 삼켰다. 다음으로 연기는 할 수 없는 것일까. 아직 부모로서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도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들이 둘이면 하나는 딸 노릇을 한다고 한다. 우리 집은 작은아이가 그렇다. 어찌나 살가운지 아직까지 딸 없는 아쉬움은 있으나 서럽지는 않았다. 여늬집 막내딸 못지않다. 학업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할 때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안부전화를 하여 부모의 건강을 챙기기도 했다. 퇴근 할 때도 제일 먼저 나와 반기며 대학에 들어가서도 안아주고 뽀뽀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아이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누워 있을 적에는 한 달이 넘도록 정성껏 간호를 했었다. 내가 몸이 불편 할 때도 음식을 만들어주고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부모의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의 삶과 마음을 헤아렸다. 스스로 용돈을 벌어 쓰는 기특함에 자식이지만 고맙기까지 했다. 이토록 살가운 아들을 보내놓고 맛난 음식을 먹으려면 목부터 메인다. 잠도 깊이 들지 못한다.

입대한지 2주차가 되면서 연락이 온다. 목소리는 의젓해졌고 군대언어를 쓰는 것이 상경하지만 나름대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잘 적응하는 듯하여 안심이 된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자 큰아이의 입대 날이 떠오른다. 연병장에서 행사를 마치고 눈물바람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대성통곡을 했다. 울음 속에‘오빠가 간다.’라는 말이 연이어 들린다. 옆에는 유모차가 있었다. 추위때문인지 투명한 가림막이 씌워져 있었다. 나도 핑계 김에 실컷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저만치 멀어져가는 아들을 따라 가족들도 걷게 되었다. 그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모차에 강아지가 앉아서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입대하는 당사자가 무척이나 아끼던 반려견 인가 보다. 그렇게 함께 떠났던 오빠는 돌아 올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훈련병인 작은아이의 하루도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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