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충청시평]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

2월 18일 대구에서 코로나19 슈퍼 전파자인 첫 확진자가 나왔고, 29일에는 741명의 확진자가 나와 정점을 찍었다. 3월 초에도 하루 확진자가 300-500명 사이를 오갔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대구는 코로나19 패닉 상태였다. 당시 확진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았던 도시. 경북의 상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4월 들어 하루 확진자가 20명 이내로 확 줄었고, 2일 대구에 집결했던 전국 구급대원과 구급차가 41일 만에 해단했다. 10일에는 첫 확진자 발생 후 52일 만에 0명이 되기도 했다. 가장 많은 확진자가 쏟아진 2월 29일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암울했던 그 도시가 이제 길고 어둡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한때 도시 봉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했던 곳이 이렇게 안정을 되찾은 것은 그 무엇보다 대구는 물론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달려온 의료진들의 노고 덕분이다. 그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끝나지 않은 전쟁터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의료진 못지않게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대구·경북의 시민들이다. 행정 명령에 의한 강제적 봉쇄가 없어도 자발적 봉쇄를 실천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역 밖은 물론 지역 안에서도 만남을 줄였다. 선진국에서도 일어난 그 흔한 사재기도 없었다. 이런 대구·경북 시민의 힘을 느낀 경험이 있다.

3월 중순경 대구와 인접한 경산의 한 문화재 수리 업체 대표가 자문을 의뢰했다.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되던 때라 전화로 메일로 일을 진행했다. 그러나 대면에 비해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니 마감이 급한 그가 정중하게 미팅을 요청했고 거절해도 된다고 했다. 금요일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던 서울역사는 텅 비어 있었다.

한산한 역사 커피숍에서 만난 그가 건넨 첫 인사는 ‘대구·경북 사람인데 만나자고 해서 죄송하다. 그리고 만나줘서 고맙다’였다. ‘우리는 의연하다. 외부에서 생각하는 만큼 동요하지 않는다. 민폐가 되므로 급한 용무가 아니면 지역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려는 사람도 거절한다’고 했다. 그와 나는 30분의 미팅 동안 한 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부터 들고 갈 요량으로 시킨 커피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미팅 후 헤어지면서 그는 다시 첫 인사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돌아서면서 그가 바로 대구·경북의 얼굴이라는 생각했다.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이 힘든 고비를 잘 견딘 대구·경북의 힘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서서히 안도와 희망으로 바뀌고 있다. 거리는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다시 문을 연 가게를 찾는 발길도 조금씩 이어진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만 야외에서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상의 완전한 회복까지는 한참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난히 이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일류 도시는 일류 시민이 만드는 것임을 그들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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