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세상을 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가끔씩, 아니 어쩌면 그보다는 자주 입을 닫고 싶어진다. 입을 닫고 싶은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는 내 귀가 열린 탓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입을 닫고자 하면 먼저 귀를 닫아야 한다. 귀를 닫았는데도 여전히 입이 근질근질하다. 나의 소양(素養)이 미치지 못함을 그제사 깨달았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하루인데, 눈을 뜬 아침은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눈을 감아도, 귀를 닫아도 몸서리칠 만큼 욕지거리가 쏟아지는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오늘은 왠지 새로운 날이 된 것 같은, 눈을 떠도 될 것 같은 아침이다. 세월호. 304명의 고귀한 목숨, 그리고 250명의 단원고 학생들, 12분의 교사, 33분의 승객, 선원, 스탭.

몸서리 처지는 비명과 아우성을 바다 속 깊이 묻어 두려고 산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던 행동들. 매년 4월 16일이 되면, 아니 어쩌면 봄 꽃 찬란한 계절이 오면 기쁨보다 슬픔이, 희망보다 절망이, 웃음보다 송구함이 가슴 속 깊이 내재되어 웃을 수 없는 어떤 슬픔으로 인해 입을 다물고 싶어진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눈이 시리다 했거늘, 4월은 슬픔과 아픔으로 눈이 시리다 못해 아리다. 지인과 통화를 하는데 잠시 세월호 분향소에 다녀오마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맺는다.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일. 하필이면 다음날이 노오란 리본으로 한국을 덮어버린, 어쩌면 파아란 하늘마저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없게 만든 부끄러움의 역사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고 떠나버린 세월호 비극 6주기가 되는 날이다.

고인들의 뜻이었을까? 선거 결과를 바라 본 뜻있는 모든 이들은 비로소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때가 도래했다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1073일. 47m 바다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간직한 채 세월호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 밀었을 때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동공은 팽창할 만큼 팽창되어 터질 것 같았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들에게 일말의 진실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6주기가 된 오늘까지도 304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일에 일말의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던 더불어민주당에 국민들이 180석이라는 막강한 화력을 지원했고, 진실을 묻으려고 발버둥쳤던 반대당은 철저하게 응징했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고 했다.

‘진실’이란 ‘사실, 거짓이 아닌 왜곡이나 은폐나 착오를 모두 배제했을 때에 밝혀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실’은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한 것’을 말한다. 그 근거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 확인 가능한 것, 관찰이나 경험 등을 통해 참이나 믿을만한 사실, 또는 보편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사실’이 반드시 ‘진실’일 수는 없다. 밝힐 수 있는 부분까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다에서 올라 온 세월호를 앞에 두고, 있는 사실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것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진실을 요구할 수는 없지만, 있는 사실이라도 왜곡없이 밝힐 수 있다면, 슬픔을 안고 가는 모든 유가족과 뜻을 같이 하는 마음이 가난한 족속들에게 한 줌의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코비드19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 있지만 180명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채울 수 없는 슬픔을 거두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마저 슬픔을 채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4월이 되면 늘 눈이 시리다. 해맑은 노오란 꽃들이 지천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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