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인 전 농관원 충북지원 품질관리과장

 

[내일을 열며] 박봉인 전 농관원 충북지원 품질관리과장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려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덥석 나 몰라라 여행을 떠날 수도 없다.

코로나가 원망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정신적으로 무감각해지는 것 같은 시간 속에 잔인한 4월이 가고 있다.

4월을 왜 그렇게 말할까? 코로나 발생이 많아서? 황사가 가장 많이 발생해? 제주 4.3사건 때문에? 세월호 참사(4.16.) 때문에? 4.19혁명 때문에? 이런 일련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면 왜 잔인한 4월이라 별칭 했을까? 상기 사건들 때문에 잔인한 4월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은 맥락과는 동떨어진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할 수 있다.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시인이며 평론가, 극작가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어트가 쓴 서사시 'The Waste Land (황무지)' 中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 ... spring rain)"구절에서 표현을 빌렸을 뿐인데 딴 뜻을 가진 말이 된 것이다.

'황무지'는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에 대해 쓴 시다. 엘리어트는 시에서 전후(戰後)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하고 있다.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달'이다. 라일락뿐만 아니라 만물을 겨울잠에서 깨워주기에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은 찬란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만화방창(萬化方暢)한 계절에 피어나는 꽃들은 개나리, 라일락, 군자란, 물망초, 영산홍, 천리향, 복사꽃, 금낭화, 수선화, 조팝나무, 명자꽃, 박태기나무 등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러 상춘객들이 북적여야 할 전국의 산하가 숨죽이고 있는 안타까운 세상을 말 없는 자연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잔인하다고? 아니면 찬란한 축복이라고?


이해인의 '4월의 시'에는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화려한 색색의 고운꽃들이 자기가 제일인양 화들짝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중략)/ 4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즐기며 /두 발이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 볼랍니다 "라고 써있다.

언젠가 끝날 암울한 코로나는 분명 우리에게 더 큰 영광을 주려는 시험인지 누가 알겠는가? 물론 받고 싶지 않은 고난의 테스트는 더욱 아니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잔인한 달이 가고 극복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세상의 한자리에 있다는 것은 영광이며 축복이다. "저에게 휴식의 봄을 주어 영광이며 축복"이라고 자연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