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전 대전일보 대표·발행인)

 

[신수용의 쓴소리칼럼] 신수용 언론인(전 대전일보 대표·발행인)

YS계(김영삼의 상도동계)는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골치 아픈 사람’으로 기피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이회창의 YS 항명사건'을 두고하는 말이다. 문민정부가 취임 첫해, 연말 이회창은 제26대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그의 취임일성이 걸작이다. 그는 내외신기자들에게 ‘대통령의 방탄총리’, ‘대독(代讀)총리’,‘행사용 총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신을 폈다.

앞서 그는 중앙선관위원장 때 정치인들과 맞서 싸웠다. 1989년 강원도 동해시와 서울 영등포을구 재보선 당시 후보 전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그러더니 동해시 선거구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를 매수, 사퇴시킨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친필로 경고했다. 또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이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보낸 서한은 대통령의 선거개입이자 위법이라며 문제를 삼았다. 그러자 여당 내에서 반발이 일자 사표를 던졌다. 정치권력 앞에 공권력이 무너진 것이다.

YS 정부출범 후 첫 감사원장일 때도 일화가 있다. 감사원장 취임기자회견에서 "청와대, 국군기무사령부 등 어느 기관이든 법 규정에 따라 감사하겠다", "현 정권에 관련된 정치적 비리라 하더라도 성역없이 엄정한 감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소불위의 청와대비서실, 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 등 권부의 핵심기관을 겨냥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었다. 평화의 댐, 율곡사업 감사가 타깃이었다. 전·노 전 대통령은 당시로선 초유의 서면조사를 했다. 수많은 전 현직 장성들과 고위관료들을 구속시켰다.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처음으로 막강한 권력기관 국가안전기획부에 대한 감사까지 했다.

그는 그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묵묵히 일하는 일선 시. 도 공무원만 감사하지, 왜 권력기관이나 중앙부처에는 메스를 대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남겼다.

그랬던 그가 국무총리에 오르자, YS계와 제일먼저 부딪혔다. 내무부장관 최형우가 통일안보문제를 국무총리를 거치지 않고 YS에게 직보하는 관행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총리는 허수아비냐. 왜 그 중요한 정보를 총리를 빼고 장관이 절차도 없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정치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공직에서는 절차도 매우 중요하다”고 기를 꺾었다. 이후 당일 오후 청와대로 들어간 이회창은 YS에게 따졌다. 그는 “총리도 안거치고 장관의 직보를 받는 게 온당하냐”며 대판 다투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훗날 평가는 각각이지만, 그는 당시 공무원과 공직자들로부터 큰 신뢰와 함께 ‘대쪽’이란 별명이 붙었다.

정부세종청사내 공무원 중에 ‘아르헨티나에 이회창 같은 공무원이 없어서 저 지경이 됐다’는 말들이 돈다. 1950, 60년대 세계경제 5위 국가였던 아르헨티나가 반세기만에 최악의 경제국가의 늪에 빠졌다. 정권유지를 위해 국가재정을 보지 않고 무상복지에만 선심을 써 온 결과다.

최근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디폴트(채무불이행)의 위기에 섰다. 마르틴 구스만 경제장관이 약 700억 달러에 이르는 채무 상환을 3년간 미루고, 이 중 415억달러를 삭감해 줄 것을 국제 채권단에 요구했다. 이로써 1955년 이후 아홉 번째 디폴트에 직면했다. 2018년 가까스로 IMF 구제금융 570억 달러에 사인하며 위기를 넘기는가 했더니, 2년을 못 버텼다. 경제 반등은커녕 지난해 물가가 54% 급등한 판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공무원들의 대책을 깡그리 정치권이 뭉개고, 공무원들의 소신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엊그제 우리도 엇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코로나19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둘러싸고 당정이 충돌했다. 총선 후 첫 주말인 19일 밤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양측의 입장을 팽팽했다. 표를 먹고 사는 민주당은 선거 기간 공약으로 내세웠던 전 국민 100%지급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나라의 곳간 열쇠를 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 하위 70% 지급 원안을 끝까지 고수했다.

22일 오후까지도 양측의 대치는 계속됐다. 결국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안이 나오면서 타협점을 찾았다. 여당의 주장대로 정책으로 결정났다. 여기에는 민주당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홍 부총리를 여러 차례 설득해 이뤄졌다.

홍 부총리의 입장은 국가재정상황을 들어 하위 70%를 주장해왔으나 정치권의 입김에 백기를 들었다. 또한 결과가 불투명한 ‘자발적 기부’ 참여를 독려해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안에 궁여지책으로 내세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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