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한밤 자고나면 짙어진 그림 / 나뭇잎 보리대궁 색칠하기 바쁘다. / 산에서 솟는 기운 강으로 흘러 / 물감도 동 났다. / 양 손 가득 물을 떠 / 세수 몇 번 하는 사이 / 녹색은 슬그머니 새소리를 모으네. / 필자의 동시 '5월 물감'이다. 

산천의 푸름과 마주한 지 얼마일까. 사회적 거리는 아직 미완이건만 천수바라기 논둑 아래 억척스런 돌미나리로 빼곡하다. 코로나19, 세 손주 평균 몸무게가 7kg 이상 늘어 두 겹 턱을 만들었다. 집은 아이들 교실·운동장·게임방·놀이터로, 아빠 엄마 사무실·화상회의실·헬스장과 할머니 할아버지 물리치료실·노치원·경로당인 채 다목적 과부하를 불렀다. 그러다 보니 허그(Hug)에 굶주린 가정의 달을 맞았다. 세계인 애창곡 중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 뿐 이리…" 언제 불러도 평화로운  'Home Sweet Home'이다. 

필자의 어릴 적, 위로 누나 둘을 뺀 아들 여섯 공간은 바깥 쪽 사랑 채였다. 잠자리에 들 때면 큰 형부터 0~5c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누운 모습은 마치 올망졸망한 꽃대 같았다. 이불 속에서도 장난기가 발동하여 간지럼을 태우거나 달걀귀신 얘기를 꺼내 바깥 화장실 출입이 두려울 땐 용하게 알고 선뜻 나선 맏형의 배려로 걱정 없었다. 동생들 자고 있는 새벽녘 방바닥을 데우기 위해 군불 지핀 둘째와 셋째 형 덕분에 등 뜨신 아침을 맞곤 했다. 올해로 90을 넘긴 큰 누님부터 갓 일흔 된 막둥이까지 팔남매 습관이 되다시피 '어렸을 적 거리'를 깜냥 껏 유지 중이라고나 할까. 

"우리 아이는 특별…" 요즘 귀 따가운 소리다. 핵가족 소수가족 독신가족에서 파생된 '헬리콥터 맘, 캥거루 부모' 장면 장면마다 지나치게 거름을 뿌려 꽃도 피우기 전 뿌리가 무를 것 같아 묘한 주름이 생긴다. 그럴 경우 제 앞가림은커녕 자아도취에 빠져 부모평생 답안지 들고 부들부들 떨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일까. 주체적 인생은 대부분 부모 슬하에서 먹고 자고 듣고 대화할 때 굳혀진다. 맑고 깨끗한 아기 눈에 비친 세상, 그 시기야말로 부모를 통째 닮아가는 데 머리만 키울 뿐 뜨거운 가슴이 실종된 노역을 반복하니 원판과 복사판 모두 절반의 생채기를 갖고 살 수밖에 다른 토를 달기 어렵다. 이래저래 '어미' 는 우주보다 더한 둥지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 동심의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살짝 더 익어야 해요. 바삭하지 않아요. 식감이 멀었거든요"  가정의 온도 차, 흔쾌하지 않은 저항감마저 깔렸다. 부모부터 변하지 않으면 가족 레시피는 민망하다. 상호 감정을 업신여긴 '너 때문에 미쳐 미쳐' 보다 '사실 난 그때 벚꽃보다 당신 모습이 훨씬 아름다웠어' 가족관계의 쫀득쫀득한 에너지 어떤가. 돈으로 빚을 수 없는 가정, 남보다 더 정나미 떨어진 '피붙이 간 거리'를 전전긍긍하는 안타까운 과제 그 해법은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불기운을 쬘 때 비집고 들어선 따스함 그거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까지 뭉뚱그린 맛깔 나는 허그(Hug)를 마냥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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