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중국 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지고지난(至苦至難)한 삶 속에서도 지고지순(至苦至順)한 주옥같은 가장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소망을 꿈꾼다. 벌써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이 바짝 다가왔다. 세월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아직까지 과거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산책로 주변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울긋불긋한 꽃들이 고개를 들어 반갑게 맞이한다. 요즘 주말에는 자주 손자와 함께 집 부근에 있는 길마중 산책길을 걷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려고 산책하는데 나름 신선하고 편안하다. 매번 걷는 길인데도 주변 나뭇잎과 꽃들의 변화 때문인지 항상 새롭고 낯설다. 며칠 전 보송보송 맺혔던 꽃봉오리가 활짝 웃음을 터뜨리며 주위를 화려하게 채색한다. 삶이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회생활 초창기 금융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후배 직원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른다. 산골 오지에서 태어난 그는 초근목피로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너무 힘들게 보냈다고 한다.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들어가기 쉽지 않은 금융회사에 취직한 일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직장생활 동안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세끼 식사 외에 거의 소비를 하지 않고 자판기 커피만을 마셨던 것 같다. 월급 대부분을 적금에 가입하여 목돈을 만든 후 땅을 사는 것이 취미라고 말할 정도였다. 80년대 후반 직장 동료들과 함께 그의 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서울에 인접한 환경이 쾌적한 곳에 테니스장과 가족 풀장을 갖춘 집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위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안타까움에 한 동안 머리가 텅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얼마 전 식당에서 옆 자리에 앉은 칠십대 중반의 친구들로 보이는 몇 분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하게 듣게 되었다. 아무리 젊어지려고 몸부림치며 매일 운동을 하여도 점점 떨어지는 체력이나 깊게 주름지는 얼굴은 이제 어쩔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서글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지 나이는 숫자일 뿐인데도 자꾸 들먹이며 스스로 움츠러들어 내면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레 짐작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마음이 가는대로 몸도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운 생각을 가질 때만이 실제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청춘을 지탱할 수 있는 비결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나이 듦이 얼굴의 주름을 깊게 할지라도 열정이 시들지 않는 한 언제나 청춘이다.

지난 주말 올해 백세를 맞이한 어머니를 찾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주 뵙지 못하여 대신 전화로 안부를 여쭈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힘이 있는지 확인하고 안도하였다. 일 년여 정도 치매를 앓으셨는데 요즘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럽다. 어머니는 만날 때마다 자식의 양손을 꼭 붙잡고 절절한 기도를 드리신다. 아직까지 어렸을 때부터 해주시던 기도의 말씀이 변함없다. 한결같은 기도 덕분에 마음으로 많은 위로와 축복을 받는다. 어머니의 기도는 언제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그래서 지금도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사실은 실패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앞으로 성공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실패에 대한 공포가 삶을 좌우할 것이다. 인생에서 몇 번의 실패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실패 없이는 자신이나 소중한 친구를 결코 알 수 없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재능이고 그 어떤 자격증보다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였다. 삶의 과정에서 성취보다 어렵고 힘들게 하는 실패와 상처들이 존재한다. 실패에 대한 미련 없이 바닥을 치면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실패하고 좌절하여 허우적거리는 삶의 밑바닥이 곧 성공으로 도약하는 디딤판이다. 시련은 기회이며 축복이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삶을 좌우한다. 희망의 의지만 잃지 않으면 저주받은 시련과 고통일지라도 축복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모든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큰 부분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경험했던 대부분의 것들을 내려놓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항상 편안하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듯이 어렵고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다. 잘 될 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어려울 때 너무 낙담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다가오는 날들을 맞이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한참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가 아름다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때는 언제나 모든 나이의 절정의 순간이다. 행복은 공기이며 때로는 바람이고 어쩌면 구름이다. 잡히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행복은 눈앞에 지금 바로 곁에 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