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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 파는 할머니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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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05  14: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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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열무김치는 여름 한철 입맛을 돋우는 반찬 중에서 으뜸일 것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란 열무보다 노지에서 햇볕을 그냥 받고 자란 열무로 김치를 담아야 열무김치가 서글서글하고 상큼하다. 열무 줄기가 연약하면 여름철 더위로 빨리 시어 버려 풋풋한 열무 맛을 쉽게 잃어버린다. 양식한 열무는 그래서 김치를 담근지 얼마 안 되어도 질척해져서 열무 맛을 잃어버린다.

한 할머니가 밭에서 그냥 내좋고 키운 열무를 한 보따리 이고 와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팔고 있었다. 채소가게에서 파는 열무보다 볼품이 없고 마구잡이로 단을 묶어서 상품이 되어 있지 않았다. 상품이란 포장을 잘해야 팔린다고들 한다. 치장을 하고 꾸며서 보기 좋게 해야 상품은 제 값을 받는다고들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면서 무엇이든 보기 좋게 꾸며 좋아야 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열무는 그러한 노력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 그저 밭에서 막 뽑아온 열무 그대로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열무 파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열무를 몇 단 사자고 하고 며느리는 볼품이 없다면서 슈퍼마켓에 가서 사자고 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저 열무는 노지에서 자랐고 금방 뽑아온 열무여서 싱싱하고 김치 맛이 한결 시원할 것이라고 하면서 열무 몇 단을 달라고 했다. 열무를 파는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말끔하게 차려 입은 아파트에 사는 할멈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아파트 할머니도 미소를 지었다.

시어머니 옆에서 시무룩해진 며느리가 열무 한 단에 얼마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얼마를 받아야할지 모르지만 한 단에 5백 원씩을 달라고 시골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자 눈이 번쩍한 며느리는 백 원을 깎자고 했다. 그러시라고 시골 할머니는 순순히 응했다. “애미야 열무 몇 단 사면서 몇 백 원 깎을 것은 없지 않느냐. 그냥 달래는 값을 주고 사거라.” 점잖게 시어머니가 면박을 주었다. 화장을 말끔하게 하고 세련스럽게 차려 입은 며느리는 돈을 부르는 값대로 치르면서 비닐 주머니에 넣어 달라고 하였다. 시골 할머니에게는 비닐 주머니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뻘건 비닐 끈으로 그냥 묶어서 주는 할멈을 힐끔 쳐다보면서 며느리가 바로 저기 아파트 수위실로 갖다 달라고 한다. 시골 할멈이 그러마고 순순히 응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애미야 너 먼저 집으로 가거라.” 그 말을 듣고서는 며느리는 휑하니 아파트로 갔다.

두 할멈이 미소를 짓다가 젊은이들에게 팔라고 하지 힘들게 손수 이고 왔느냐고 아파트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젊은이가 있어 야지요 아이들은 다들 월급 생활을 하고 영감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면서 농사일을 놓지 않아 지은 열무를 내가 이고 왔노라고 시골 할멈이 말을 받았다. 다시 두 노파는 서로 미소를 건넸다. 그리고 묶여있는 열무 단을 들어다 주려는 할멈을 말리며 아파트 할멈이 들고 갔다.

추레한 차림으로 열무를 이고 와서 파는 할멈은 수수하다기 보다는 초라해 보일 정도로 꾸밈이 없다. 아파트 할멈은 말끔하게 차려 입었지만 마음만을 열무를 파는 할멈과 통하는 길이 있다. 그러나 며느리는 겉은 세련스럽고 말끔하지만 속은 앙큼하고 약고 영악하다. 채소가게에선 8백 원 하는 열무를 5백 원 달라고 하는데도 깎자고 하는 며느리의 마음은 무서운 속셈이다.

열무 파는 현장에서 군자와 소인은 분명해졌다. 두 할멈은 군자의 모습을 보였고 똑똑한 며느리는 소인배의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속셈으로 그득한 마음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사람을 치고받는 마음속의 속셈을 밝히는 이러한 문화가 무서워진다. 인심이 부드러운 사회가 문화의 사회 이지 인심이 사나우면 아무리 세련된 세상일지라도 문화가 병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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