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정 넘치고 한 많은 민족이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유독 함께 하는 걸 즐겼던 겨레다. 그러면서도 남북전쟁을 치르고, 영호남 지역감정을 겪었고, 진영논리도 심각하다. 즐기는 것도 함께, 싸우는 것도 극한으로 함께 해왔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과거 술자리에선 술잔 돌리기, 술 권하기가 일상이었다. 두 명 이상 모이면 남자들은 형님 동생으로 여자들은 언니 언니로 서열화와 동기화가 일상인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나이로 서열화 하는 경향이 없진 않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대와 친해지면 그 오지랖이 보통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한 마을에 같이 살며 친해진다면, '그 집 숟가락 숫자도 안다'는게 자랑이었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실제로 같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친숙한 관계였다. 그러면서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경쟁도 샘도 많은 민족이다.

이런 모순된 상황 때문일까. 우리는 그 숱한 난관을 겪으면서도 제법 잘 살아왔다.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과 독재를 넘어왔다. 수탈당한 땅에서 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됐지만, 산업화를 이뤄냈고, 정보화 시대를 이끌었으며 반도체 신화를 썼다. 그 것도 60여년 만에 말이다.

극단적인 한국인 기질은 부정에서 긍정을 끌어내기도 하고, 긍정에서 부정을 이끌기도 했다. 잘 뭉치지 못한다는 모래알 기질은 부정적이지만, 발화점이 생기면 무섭게 참여해서 긍정을 이끌어 낸다. 붉은악마, 촛불 평화시위 등은 상징적이다. 쉽게 뭉쳐지지는 않지만 한번 참여하면 마무리를 할 때까지 지속한다. 끈기의 겨레다.

반면, 당파싸움과 진영논리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옳은 방향이라도 '같은 편 아니니 안 듣겠다'는 논리다. 진영논리로 뭉쳐지는 건 정말 잘못된 일이다. 당파적 발상이 다양성이라면 긍정적이지만, 오히려 분열을 통한 내편 만들기라면 부정적이다. 통합은 다양성을 버리는 게 아니고, 다양한 색깔을 함께 품어낸다. 마치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우리는 질병을 극복하고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사실, 코로나 질병 때문에 어려운 것보다 그 질병으로 인해 파생된 경제난국, 사회적 취약계층 위기 등이 더 큰 문제다. 코로나로 죽는 게 아니라 삶이 너무 힘들어서 파국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회 안전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지급뿐만 아니라 그 사용과 이후에 벌어지는 경제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 전 국민에게 한시적으로 지급되는 재난 지원금을 통해 경제부양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면, 기본소득 등 새로운 수요창출 모멘텀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선 당파적 진영논리 싸움을 종식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본떠서 '내편 거리두기'를 실시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유용한 모든 방안이 검토 돼야 한다. 코로나 위기는 극복할 수 없는 위험이 아니고 극복할 수 있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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