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서너 살쯤 되어 보임직한 아기가 양손에 떡을 쥐고 놓지를 않는다. 소녀 같은 젊은 엄마가 애가 탄다. 아기가 떡을 입에 넣으려고 기를 쓴다. 아기 엄마는 아기 손에서 떡을 빼앗으려 애를 쓴다. 달래기도 하고 야단도 쳐보고, 아기엄마가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다. 결국 강제로 엄마에게 떡을 빼앗긴 아기는 기를 쓰며 울어 댄다. 손에 꽉 쥐고 있던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굳이 가르침이 필요 하지 않은 것 같다.

빌딩과 자동차의 행렬이 난무하는 일상을 벗어나, 잠시 누려보는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의 풍경 속에 있다. 나무와 숲과 바람이 머무는 곳! 동선의 편리함도 없다. 구불거리는 길을 반듯하게 잡아 놓지도 않았다. 물 한 모금을 마시려면 신발을 신고 마당을 질러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 곳 역시 노력과 수고 없이는 하나도 쉬이 얻을 게 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냥 처마 밑, 마당 끝에 앉아서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오월의 산야가 녹음으로 짙어져 가는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거나, 때때로 고샅을 돌아 누군가 찾아 올 듯한, 동구 밖을 돌아보기만 하는데 지끈거리던 두통이 사라졌다. 대상 없이 졸이던 마음도 평안해졌다. 보너스 같은 싱그러운 공기는 폐부 깊숙한 곳을 돌아, 불필요한 것들을 트림처럼 몰고 나왔다.

한 떼의 새떼가 날아왔다, 마당가에서 연신 무언가를 쪼며 종종 거린다. 세상이치 다 꿰뚫고 있는 듯, 목소리 키우던 세인들이 떠난 빈자리에서 이, 살가운 풍경을 보고 있다. 내가 먹고 사는 일처럼 그들도 먹고사는 일이었다.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먹이를 쪼아대는 그들 속에 내가 보인다. 떡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아가의 작은 손이 참새의 작은 등짝으로 클로즈업 되었다. 삶 속에서 좀 더 커 보이려고 발돋움 치고 목소리 키우고, 몸부림치며, 움켜잡으려던 것들은 고집도 아닌 아집이었다.

시나브로 초록으로 채워져 가는 들녘으로 휑하니 마지막 꽃샘바람이 목덜미를 쓸고 지나가며 속닥였다.

‘손에 쥔 것들을 어찌 내려놓아!’결코, 쉽지 않을 건가 봅니다. 오늘도 어제 같은, 그런 하루가 또 저물어 갑니다.

‘뎅그렁 뎅그렁……’

처마 끝에 풍경소리만 끝 모를 공간을 가득히 채웠다. 허공에 매달려 바람 에 흔들리는 물고기 한 마리! 깨달음을 찾겠다고 낮이고 밤이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한 줄기 바람에도 흔들리는 제 모습은 잊었는가! 어리석은 자신은 알 리 없고 108배라도 해 보겠다고 목탁소리 따라 연신 무릎을 구부리며 절을 올린다. 바람이 듯, 구름이 듯 처마 밑 풍경소리는 무한의 천공을 흔들고,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하는 작은 물고기는 깨달음의 바다를 꿈꾸는가! 겨울을 견딘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잎을 틔워낸다. 이들이 아름다운 것은, 품었던 것들을 서로에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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