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 전 대전일보 대표이사· 발행인

[신수용의 쓴소리칼럼] 신수용 언론인 전 대전일보 대표이사· 발행인

충청도에서 여당 국회의장과 야당 국회부의장이 한꺼번에 탄생한 때가 있다. 지난 2012년 4월 11일 치러 구성된 제19대 전반기 때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5선인 강창희 국회의장이었고, 야당은 더불어민주당 4선의 박병석 국회부의장이었다.

공교롭게도 강 의장은 대전중구에서, 박 부의장은 대전 서갑구에서 금배지를 더했다. 둘 다 대전출신으로 고교 선후배다. 두 사람 모두 정치 분야가 전공이 아니었다. 강 의장은 육사를 나와 군에 있다가 제12대 때부터 의원으로 활동했다.

박 부의장도 중앙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베이징특파원등을 지낸 언론인이다. 당시 국회의장단이 구성된 뒤 두 사람에게 19대 국회상(國會像)을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강 의장도, 박 부의장도 말을 맞춘 듯이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두 사람모두 충청인의 기질 그대로 ‘꼼수를 모르는 정도’만 걸어온 터라 기대를 가졌다. 더구나 19대 국회가 개원도 하기 전부터 그해 연말에 있을 18대 대선분위기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의 존립이 걸린 대선에 매달리다보면 국회는 개원 초부터 막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마침내 그해 7월2일이 돼서야 제19대국회가 개원됐다. 예상처럼 지각개원이었다. 강 의장은 당시 개원사에서 ‘지난 4·11총선에서 '싸우지 마라', '부정부패하지 말라',‘일 좀해라’는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며 의정에 헌신하자고 외쳤던 일이 생생하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19대 국회가 개원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정치가 위기에 처해 있다. 더는 변명과 구실이 통하지 않는다"라며 “서민의 삶을 챙기고 나라의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때 강 의장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데는 아직 두 가지가 부족하다. 하나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이며 다른 하나는 신뢰 가치"라며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은 반드시 해내고, 안 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용기와 절제를 발휘해 달라"고 했다.

이후, 국가 의전서열 2위이자, 입법부 수장의 애타는 이 개원사처럼 일하는 국회가 됐을까. 그 답은 ‘아니올시다’다. 가면 갈수록 여야의 정쟁은 더했고, 걸핏하면 국회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 일이 상례화됐다. 당리당략에 매몰됐다. 국민과 언론이 무어라한들 귀를 닫았다.

강 의장 이후 정의화, 정세균, 문희상 국회의장들도 엇비슷했다. 모두 ‘일하는 국회’,‘생산적인 국회’,‘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외쳤지만, 유감스럽게 나아지지 않았다. 국회의장들의 개원사에서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물으나 마나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탓이다.

오는 30일 출범하는 21대 국회의 의장역시 일하는 국회를 강조할 것은 자명하다.

보름 뒤에는 또다시 제 21대 새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다. 새 얼굴이 절반이 넘는 국회의 주인공을 보게 된다. 그간 당선인들은 워크숍도 가졌고, 크고 작은 당내 행사를 통해 마음가짐도 다졌다. 지난주에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원내사령탑도 뽑았다.

양당의 원내대표들은 한결같이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한다’고 부르짖었다. 의정에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물론 국회가 이들 원내대표들의 결의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면 국회의원 개개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데 국회가 개원할 때마다 이를 내세웠다. 그러나 몇 달 지나면 이는 ‘구호’이거나 ‘선언’에 그쳐왔다. 국가를 뒷받침하고 국민의 삶을 챙겨야했을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만 내놨지, 의정활동에는 불성실했다. 상대당의 의견을 이해하고 절충하는 협치가 사라진 이유다.

한 조사에의 하면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36.6% 수준이다. 지난19대(43.9%)에 크게 못 미친다. 오는 29일까지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1만5256건도 자동 폐기된다.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로 ‘최악의 국회’란 오명이 뒤따를 게 뻔하다. 법안 처리율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법조항하나, 규정하나로 국민과 기업이 죽고 사는 판이라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선지 최근 여권일각에서. 놀고먹는 의원을 제재하는 ‘국민소환제’논의가 한창이다. 오죽하면 저러랴 싶다. 도입취지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국민소환제 도입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소환제는 국민들의 청원을 통해 임기 중인 선출직 공직자의 직위를 박탈하고, 임기를 종료시키기 위해 투표에 부치는 제도다. 국회의원 견제를 위한 법적 장치로다. 선출직 중에 대통령은 탄핵소추권이, 지난 2006년에는, 지자체장·지방의원들만 주민소환제가 마련됐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없다. 국회의원의 유일한 견제 수단은 선거를 빼면 아무것도 없다.

20대 국회에서만 국민소환제 관련 법안이 5건 발의됐다. 하지만 여야 이견 등으로 본격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180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이 법을 처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회사무처의 얘기를 보면 프랑스 등에서는 세 번 이상 상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상임위원 자격을 박탈한다. 또 벨기에는 상습적으로 불출석하면 세비의 40%를 깎는다. 호주와 프랑스 등에서는 일정 횟수 이상 본회의에 불출석하면 제명까지 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소환제등 직접민주주의에 공감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은 주권자로서 평소에 정치를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번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었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21만여 명이 동의한 국민소환제 요구에 “유독 국회의원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2월 4.15총선 공약으로 국회의원이 가지는 헌법상 불 체포·면책 특권을 국민이 직접 제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국민소환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일하는 국회’ 공약을 넣어 ‘청렴 의무’, ‘국가이익 우선’, ‘지위 남용 금지’ 등 의무를 위반하면 의원직을 파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역시 최근 “21대 국회는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 일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달 국민소환제 도입 필요성을 분석에 착수한 상태다.

야당 일각에서는 대의민주주의 제도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는 이도 없지 않다. 또 특정정치인을 공적으로 몰거나, 흠집내기용으로 악용될 소지를 지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들에게 적용되는 국민소환제가 악용된 예는 없다. 놀고먹는 국회의원의 제재수단을 당장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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