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사는 곳만으로도 이미 삶이 성공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그곳, 강남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의 아파트 가격은 어림잡아 내가 사는 청주 아파트의 10배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의 집은 내가 사는 집보다 작고 더 오래된 낡은 아파트이다. 당연히 옹색하기도 하고 주거환경이 주는 삶의 질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가 주거 지역을 바꾼다면 넓은 공간과 최신의 생활환경을 누리고도 남은 돈으로 풍족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그 가족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사람은 무엇을 기준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걸까.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잣대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물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그 가치를 정한다. 그것이 가진 본연의 기능이 얼마나 인간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정한 가치가 사용가치다. 또한 모든 물건은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음으로 이 교환 비율로 정한 가치를 교환가치라 한다. 사용가치는 그 물건이 얼마나 유용한가로 가치가 정해지지만, 교환가치는 효능보다는 타인이 그것을 얼마나 욕구하느냐에 의해 가치가 정해진다.

세상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거의 동등한 물건도 있으나 그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상품도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공기나 물 등은 그 효용성은 대단히 높으나 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어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가 매우 낮다. 반면에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류는 효용성은 낮으나 그 희귀성으로 인해 교환가치가 매우 높다.

주거지도 그럴 수 있다. 어떤 재개발 예정의 아파트는 주거는 불편하나 교환가치가 매우 높고, 반대로 살기는 매우 안락하나 교환가치는 매우 낮은 집도 있다. 미래에 얻게 될 이익과 기쁨을 기대하며 현재의 기쁨을 유예하며 사는 삶은 교환가치에 무게를 두는 삶일 것이다. 반면 오늘의 행복과 지금의 자신에 집중하며 현재의 삶을 중시한다면 사용가치에 중심을 두는 삶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의 결핍을 감내하는 삶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우리는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교환가치에만 매몰돼 현재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무조건적인 유예는 어쩌면 행복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나, 욜로(YOLO)를 추구하는 현재 지향적인 요즘 세태는 미래 없는 삶에 대한 자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사용가치의 재발견에 대한 성찰일는지도 모른다. 그저 먼 곳에서 비추는 등대의 불빛만을 쫓아 내일을 꿈꾸는 삶만이 가치 있겠는가.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자신의 바로 앞을 비추며 현재라는 발아래 놓인 작은 기쁨에 충실한 삶도 중요하다.

진주조개는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며 찬란한 진주를 품어낸다고, 고통 끝의 성취를 칭송하고 인내의 모범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빚어낸 진주의 눈부심을 진주를 품어 낸 조개가 누리는가 아니면 고통을 감수하라고 바람 잡은 그들이 누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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