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5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이다. 하루하루 바람의 온도가 달라진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꽃은 피고 지고 새들은 저마다의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활을 기다린다. 봄비가 한번씩 내릴 때마다 녹음은 짙어간다. 서로 거리를 두고 살기로 작정했던 시간들도 5월에는 무장해제가 된다. 넝쿨장미가 피는 5월이다. 넝쿨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피기 때문이다. 서로 의지하며 담장을 오르는 넝쿨장미의 계절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은 감사의 달이다.

엄마는 봄 내내 투덜거리신다. 목련이 저 혼자 피었다가 진다고 전화를 하셨다. 며칠 후에는 영산홍 꽃들이 곧 필 기세라고 하시고 마당에 꽃 잔디가 즈덜 끼리 난리가 났다고 하셨다. 수국이 하도 탐스럽게 피어서 혼자 보기 아깝다고 하신다. 그래, 꽃도 혼자보기 아까운 것이 엄마의 마음이신 거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주말에 우린 그 꽃들이 난리인 엄마의 마당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5월 우리 가족의 행사 날이다. 혹여 꽃들이 다 지기라도 할까봐서 엄마는 내심 안달을 하셨을 거였다.

라일락 향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운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다 함께 어버이 은혜 노래를 부르며 엄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건배도 하며 웃음꽃이 핀다. 당신의 강아지들이 마당가득 모여 있으니 마냥 행복해하신다. 먼저 가신 아버지 생각을 하시면서 혼자 누리는 오늘의 호사를 미안해하시는 눈치였다. 5월의 꽃 잔치 날이다.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산소에 올라가서 카네이션 꽃을 심어드렸다.

아들네도 어여쁜 손녀들 손을 잡고 한손에는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들고 달려왔다. 행여 카네이션 꽃이 시들기라도 할까봐서 서둘러 온 눈치다. 연분홍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가슴에 안긴다. 난 왜 이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언제나 부끄러운 걸까! 지난해도 올해에도 나는 여전히 부끄러운 카네이션 꽃을 받는다. 꽃을 주는 아들은 꽃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지만 나는 왜 이 순간 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파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매번 카네이션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부모인가하고 자책을 하게 된다.

아들이 어둡고 캄캄한 길을 갈 때에 환하게 등불이 되어 준적도 없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덜어 주지도 못했다. 내 삶의 무게로도 나의 등은 휘어있었다. 그럼에도 넘어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도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고사리 손으로 만든 색종이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그때부터 행복을 넘치게 받기만한 엄마였다. 아들이 준 카네이션을 화분에 옮겨 심고 정성들여 흙을 도닥도닥 다독여준다. 목마르지 않게 물을 자꾸자꾸 주었다. 햇살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에 두고두고 바라보고 싶은 꽃이다. 내가 아들에게 받은 카네이션은 언제나 부끄러운 꽃이었고 나의 엄마에게 내가 바친 카네이션은 한없이 알량한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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