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관용 범위 넘어"
청와대서 '5·18 인터뷰'

[서울=충청일보 이득수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다양한 생각을 허용하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폄훼까지 민주주의의 관용이 인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재인의 5·18'이라는 제목의 이 인터뷰는 17일 오전 광주MBC '5·18 민주화운동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됐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법적으로 정리된 사안도 지금껏 왜곡하고 폄훼하는 발언들이 있다"며 "일부 정치권에서도 확대 재생산시켜지는 일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은폐, 왜곡한 공작의 실상들이 모두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문 대통령은 "1987년 5월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부산 시민들에게 광주의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줬다"며 "그런 일을 함께 한 노무현 변호사가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의 상처가 치유돼야 화해가 있고 국민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그 출발은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고), 그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화해가 있고 통합이 있을 수 있다. 용서도 진실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제가 (2018년 3월) 발의한 개헌안 그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의 이념의 계승, 이것이 담겨 있다"며 "비록 개헌이 좌절되었지만 앞으로 언젠가 또 개헌이 논의가 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980년 5·18 전날인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확대되고, 그날 바로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다"면서 "당시 그 경찰관들은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된 그(것)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계엄군의 발포로 많은 광주 시민들이 사상을 당한 사실, 경찰은 발포 명령을 거부해 진압에서 배제가 되었다는 사실, 시민군들이 예비군이나 경찰 무기고를 열어서 무기를 들고 맞서고 있다는 사실, 저에게 경찰정보망을 통해서 올라오는 이런 소식들을 매일매일 전해주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경희대 복학생 대표로서 학생운동 지도부의 이른바 ‘서울역 회군’ 결정에 반대했다고 했다.

5·18 사흘 전인 1980년 5월15일 서울에서만 수십만의 학생들이 “전두환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군이 시위를 강제로 해산할 것’라는 소문이 나돌자 당일 밤 학생운동 지도부는 일단 시위를 멈추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회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나는 그때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는데, 나뿐만 아니라 대체로 복학생 그룹들은 말하자면 민주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군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그 고비를 넘어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주시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서울지역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아주 가혹한 그런 진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 지역의 기념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대한민국 전체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로 승화시키고, 대통령으로서도 해마다 참석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두 해의 한 번 정도씩은 참석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도 허용하고, 그래서 좀 제대로 기념식을 치러야겠다는 그런 식의 각오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 제 각오와 약속을 실천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뿌듯하게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6월항쟁이 일어났던 87년 5월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서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5·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다”며 “영화 상영하듯이 하루 종일 모니터로 광주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것이 부산 지역 6월항쟁의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부산의 가톨릭센터가 6월항쟁 때 서울의 명동성당처럼 자연스럽게 부산지역 6월항쟁을 이끄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면서 “그런 일들을 함께했던 그 노무현 변호사,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그러나 광주를 확장한 그런 분으로서 기억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