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임득
수필가

여름이 한창 익어 갈 무렵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숲은 한층 더 생명이 넘치고 짙어졌음을 알 수 있다.

푹푹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람과 빗줄기 때문이 아닐는지. 포도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 단조로운 도시의 색깔로 인해 여름이 짜증스럽기도 하겠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바람이 불어와 씻겨 줄때의 청량감과 달구어진 회색도시를 식혀주는 한줄기 소나기가 있어 여름의 참맛을 느끼며 사는지 모른다.

여름 숲은 잎을 틔우던 봄날처럼 신비롭지도 않고, 온갖 색채로 치장한 가을 숲처럼 황홀하지도 않다. 나목이 되어 흰 눈을 소복이 덮고 있는 겨울 숲같이 깨끗하지도 않지만 신록의 청량감은 있다. 짙푸른 녹음은 시각적이나마 시원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 잠시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도 온전한 초록으로 심신에 안정을 주는 여름 숲이다. '숲을 바라보면 나무를 볼 수 없고, 나무에 관심을 갖다 보면 숲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라고 했듯이 살아오면서 어느 한곳에만 치중하다보면 중요한 일은 정작 놓쳐 버린 것은 아닌지. 아내와 엄마의 자리에서 잠시 비켜서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여름 숲은 준다.

어느 계절이나 숲은 살아있는 생명이다. 풋풋함이 묻어나는 인생의 봄날, 무성한 나뭇잎 속에서 느껴지는 초록의 싱그러움, 갖가지 빛깔과 열매로 풍성한 가을 숲, 빈 가지의 허전함속에 생을 마무리하고 다음해의 푸른 꿈을 기약하는 겨울 숲이 그러하다.

때가되면 잎이 돋아나고 떨어지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내가 여름 숲을 좋아하는 것은 절반을 살아온 내 인생에서 남은 반에 발자국 떼어놓기 싫은 영원히 푸르른 숲이고 싶어서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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