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충청논단
오월이 지금 가고 있다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5.28  16:51:3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따사로운 햇살이 무한한 자연의 은총으로 내리쬐는 오월이다. 청량한 하늘이 생명의 빛으로 다가오는 순간 저절로 경외감이 느껴진다. 햇살의 따스함에 바람의 싱그러움에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에 감사하는 아침이다. 연초부터 대부분 일상이 정지되었지만 하늘은 예전에 비해 맑고 푸르다.

피천득 시인은 방금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과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투명한 비취가락지라고 오월을 노래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서리풀공원의 좁고 긴 오솔길에 물오른 연초록빛 나뭇잎과 수풀이 꽃무리들과 어울려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찬란한 봄날의 햇빛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하여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산책로에 피어있는 붉은 장미꽃이 아름다고 화려하다.

송나라 학자 정이의 인유삼불행(人有三不幸)인 소년등과 일불행(少年登科 一不幸) 석부형제지세 위민관 이불행(席父兄弟之勢 爲美官 二不幸) 유고재능문장 삼불행(有高才能文章 三不幸) 중 어린 나이에 출세한 것이 첫째의 불행이라고 하였다. 이십대에 소위 말하는 소년 급제하여 고향 인근지역까지 출세하였다는 소문이 났었던 후배 하나가 있다. 삼십대에 자신이 속한 전문직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부와 명예를 이루었으며, 당시 유력 정치인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에서 하지 못할 일과 두려움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예상치 못한 일에 연루되어 전 재산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그 일로 부친은 충격을 받아 갑자기 돌아가시고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장면처럼 부인과 어린 자녀들은 지하 단칸방에서 사글세로 어렵게 살았다고 고백하였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일주일을 꼬박 사무실과 현장에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가끔 과거를 회상하며 화려했던 시절을 무용담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가끔 만날 때마다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일상의 편안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습관 때문인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자주 부딪치며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의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집착하여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상처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준다. 바라는 게 없으면 실망도 없고, 기대가 없으면 또한 상처도 없다. 때가 되면 상처는 아물고 기억에서 사라진다. 적게 가질수록 단순해지고 많이 가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이치다. 무한한 재산은 무한한 가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황으로 수많은 기업이나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필자가 경영자문한 업체는 유망한 아이템을 보유하고 경영진이 성실하게 노력하는 업체로서 평상시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어 자금사정이 나빠졌다고 한다. 혼자만 잘한다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상대방의 관계성과 함께 일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는 사람도 마음이 없으면 먼 사람이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다면 가까운 사람이다. 사람이 유일한 재산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얼마 전부터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자주 찾아오는 꿈을 꾼다. 요즘 세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걱정스러워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생전에 아버지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가슴이 따뜻한 분이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자세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였던 것 같다. 추도식에서 가족들이 만나 대화할 때마다 자주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추억한다. 세상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심에 늘 감사하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욕망과 불안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삶이 바람직하다. 장미만큼 꽃말이나 색깔이 다양한 꽃도 없다. 장미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열정적인 사랑, 순결, 우아함, 이별의 다양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어서 꽃의 여왕이라고 한다.

장미꽃이 담장 밖으로 삐쭉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 봄날의 화려함을 발산하고 있다. 머지않아 오월이 지나고 유월이 오면 태양은 정열을 퍼붓고 녹음이 짙어질 것이다. 세월은 잠시 머물 듯 하다가 순간 빠르게 흘러간다. 삶이란 생각이 변화를 만드는 과정이다. 시도하지 않고 후회만 하면서 살기에는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 만물은 변화한다. 신록의 오월이 지금 가고 있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