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큰아이가 순항을 마치고 입항하던 날이다. 새벽같이 달려가 겨우 두어 시간 얼굴을 보고 큰아이는 부대에 남겨둔 채 돌아오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휴게소는 안동 고등어구이가 주메뉴였다. 한상 차려놓고 단란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중년의 남자가 선채로 컵라면을 먹는다. 테이블은 절반이 넘게 비어 있는데도 앉지 않았다. 뜨거운 것을 마시듯이 먹은 그가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걷는데 자판기 커피를 한손에 든 그도 대형트럭을 향하고 있었다. 왜 그 장면이 머리에 남는지 모르겠다. 간단한 요기가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얇은 주머니에 본인의 한 끼는 허술하게 때웠을 것이다. 그런 한 가정의 아버지도 가족과 여행을 할 적엔 아끼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계셨었다. 내가 열다섯 살이 된 여름에 지병으로 소천 하셨다. 하늘이 구멍 난 것처럼 폭우가 내리고 맨 몸으로 비를 맞는 듯 한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 날들이었다. 마음을 의탁 할 곳이 없어 나부끼는 깃발처럼 파닥였다. 목사님과 선생님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백부님들이 순간순간 아버지로 느껴졌었다. 모두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내게 생명을 주신 분만큼 저릿하지는 않다. 건강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과 어린 내게 너무 무거운 짐을 남겨두고 가신 것에 대한 원망이 한데 엉겨 있었다. 그 짐은 아직도 어깨를 누른다. 하지만 마음 밭을 바꾸어 생각하면 그로 인해서 열심히 살게 되었다. 나를 돌보는 것보다 남겨진 식구들과 함께 앞으로 나가느라 뒤뚱였다.

결혼을 하면서 아버지는 백부에게서 남편으로 옮겨왔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어려움 속에서든지 그가 함께 한다는 믿음은 나를 안도하게 한다. 가끔은 그것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내편인 사람이라 믿는다. 언젠가는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인 이별이 다가 올 것이다. 서로 가까이 있어도 멀게 느껴 질수도 있고 멀리 있어도 곁에 있는 듯 하리라. 마지막까지 동행할 수는 없을 터 혹여 누구라도 먼저 떠난다면 우리들의 물리적인 거리는 뒤 따라 갈 때 까지 좁혀질 수 없다. 어느 순간 남편에게서 아이들에게로 나의 '아버지'는 바뀌게 될 것이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우리에게 느꼈던 믿음과 의지를 내가 자식에게 갖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겨우 십 오년 동안 함께 한 아버지가 그립다. 아득한 봄날의 기억이다. 곱게 수놓은 명주손수건을 펼쳐놓고 색실의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거기쯤에 멈추어 선다. 세상엔 비정한 아버지도 많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기억만 남겨주었다. 지게를 진 튼튼했던 아버지의 어깨가 불길에 그을린 볏단 마냥 사그러들은 어느 여름 날 오후가 선명하다. 집안에 어른들이 계셨지만 아버지에 대한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 갈증은 더욱 심해졌었다. 지난한 세월이 흘렀다. 나도 철이 들었나 보다. 이제야 손을 꼭 잡고 짧은 인연이지만 당신이 내 아버지여서 행복하고 그때 받았던 사랑으로 오늘을 살아 낼 수 있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 계절이 다 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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