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못된 짓을 범하고도 무엇이 못된 짓이며 어떻게 하면 못된 것인가를 모르는 인간은 참으로 딱하다. 무릇 못된 짓은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를 안다면 사람이 자기만을 위해서 세상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못된 짓은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에 비롯된다. 버릇이 없다고 남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을 살펴볼 줄 아는 사람은 못된 짓을 범하기가 어렵다.

막돼 먹은 짓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하늘을 보고 침을 뱉으면 결국 그 침방울은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는 법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마구잡이로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자신을 자신이 망신스럽게 하다 보면 남의 눈길을 사게 마련이다. 그리고 망칙한 놈이란 말을 듣는다. 

여름 휴가철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불쌍하다고 한 스님이 세상을 향해 흉을 보았다. 절에다 얼마의 돈을 주고 제를 어느 날 올려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제삿날이 되어 제상을 마련해 좋고 제를 부탁한 사람들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망자의 이름만 올려놓고 목탁을 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묵은 사람이 어찌 목탁을 치는 사람을 알아보겠느냐고 되묻고는 후손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절간의 중놈에게 얼마의 수고비를 주고 제삿밥을 부탁한 꼬이라고 그 스님은 세상인심을 흉보았다. 

제사는 목숨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바치면 된다. 제상을 산해진미로 차린다고 예를 갖추는 것은 아니다. 이승을 떠난 영혼이 무슨 음식 타령을 할 것인가. 본래 제사 음식이란 산 사람들의 목구멍을 위해 마련하는 것일 뿐이다. 정성을 들여 떠놓는 냉수 한 사발 가지고도 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일이다. 휴가철에 젯날이 들었다면 휴가를 간 곳에서도 얼마든지 제를 올릴 수 있을 터인데 이 돌팔이 중보고 목탁이나 쳐주어 망자는 달래 달라고 몇 푼을 던져 놓고 가는 세상은 살맛이 없다고 그 스님은 망연해 했다. 

불가의 스님도 예를 말하고 있었다. 못된 짓이나 막가는 짓은 예를 짓밟는 짓이 되고 만다는 것은 불가든 유가든 다를 바가 없다. 부모 젯날은 잊지 말고 제상 앞에 앉으라고 타일렀다. 자식들이 번듯이 있는 망자를 절간의 중놈이 모시면 되겠느냐고 그 스님은 푸념했다. 이제는 죽더라도 휴가철을 피해서 죽어야 한다는 그 스님의 푸념은 우리가 얼마나 막가고 못된 짓을 하면서도 불감증에 걸려 있는 가를 헤아려 보게 한다. 물론 위아래도 없어지고 힘만 있으면 다 된다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판에 무슨 놈의 예냐고 삿대질을 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 스님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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