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5월의 꽃들이 시절 따라 지고 6월엔 녹음 짙어진 숲길이 꽃을 넘어 자연을 수놓는다. 길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들이 찾아와 시간 속에 명소가 된다. 낙동강을 끼고 조성된 ‘쌍절암 생태숲길’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다. 어머니를 모시고자 청주로 이사 온 여동생의 시댁은 예천이다. 그 생태숲길은 시댁에 인접하여 있고, 2017년 우리나라 걷기여행축제에 선정된 그 고움을 동생도 알고 있었는지 흔쾌히 따라 나선다.

곤충도시이며 물이 달기로 이름난 예천, 볼 일을 마치고 네비에 의뢰해보니 예천군 풍양면 청곡길에 위치한 ‘삼수정’을 안내한다. ‘쌍절암 생태숲길’은 삼수정부터 삼강주막까지 강과 함께 걷는 숲길이다. 어느 새 논에는 모내기를 마쳐 아기 벼 싹이 줄지어 있고 도로변에는 봄 코스모스인양 가는 허리를 흔들며 노오란 금계국이 어리숙한 우리 자매를 환영한다. 보은을 지나 남상주로 나와 긴 다리를 건너 잠시 내리니, 국가하천 ‘낙동강’ 표지판이 우뚝 서있었다. 지나온 쪽 산들이 겹겹이 운치있는 색으로 서 있고 강둑위로 노랗게 금계국이 말없이 흘러가는 낙동강을 감싸안고 있었다. 아름다움의 극치에 몸을 떨며 첫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불고불 오지 길을 넘고 넘으니 삼수정이 보인다. 멀리 누워 흐르던 낙동강에 내 두발을 닿으려하니 그 감격을 가눌 길 없다. 낙동강이 굽이도는 연안마을 언덕위에 자리하여 낙동강을 훤히 바라보고 있다. 소나무 두 그루와 학자나 벼슬을 상징하는 500년 된 회화나무가 유교 문화 깃든 조선시대의 정자를 그림처럼 지키고 있다. 가운데 마루방을 놓아 정자는 정겨움이 감돌고 있다.

늘 그리던 낙동강은 강폭이 넓어 마치 누워서 흐르듯 평온하다. 한 시도 잠자지 않고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강을 늘 사랑해 왔기에 무슨 말이라도......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을 두루 거쳐 부산에 이르러 남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한반도에서 압록강·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유로가 길다하니 그 강물따라 흘러 흘러가고 싶은 꿈에 젖는다.

삼매에 빠진 나를 동생이 일깨운다. 삼수정을 뒤로하고 서둘러 생태숲길 입구에 이르자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 안내도가 크게 세워져 있다. 낙동강 마지막 주막이었던 삼강주막에는 다음으로 미루고 쌍절암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생태숲길은 나무데크로 경사가 없는 코스여서 강을 안고 벗삼아 걷는 포근함에 한걸음 한걸음이 소중하다. 쌍절암이 암자인가 했는데 큰 바위에 새겨진 한자를 살펴보니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피하여 동래 정씨 두 여인이 이곳에서 강으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바위인 것이다. 이어 절벽에 위치한 관세암이 눈에 들어온다. 천지해(天地海) 법당의 부처님은 하시라도 낙동강을 바라보느라 아쉬울 게 없을 것이다.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바위로 알려진 시인 유치환도 「겨레의 어머니여, 낙동강이여!」를 발표하여 낙동강에 대한 사랑을 깊게 하였다. 낙동강은 들풀의 손을 잡고 흘러 흘러간다. 언제 그 강을 따라 걷고 싶다. 내 생애 유월의 강을! 코로나로 인한 슬픈 이별까지도 안고 가려는 영원의 흐름! 그대 또한 분리된 이웃의 손을 잡고 유월의 강가로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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