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북대 교수

 

[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에서는 강한 자와 강한 집단이 살아남는다. 인간의 왕국에는 가진 자가 강한 자이다, 그래서 인간은 권력과 재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가진 존재들을 향해 대다수의 인간들이 열광한다.

어느 조직에서나 살아남기 위한 조직 내의 집단적인 투쟁이 존재한다. 조직 안에서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세상살이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고자 한다. 아무리 정치적인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을 한다 해도, 그 원초적인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개인에게는 자신이 속한 조직 내의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에는 조직에서는 아류이거나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 속칭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욕구의 관점에서는 더 원색적인 본능을 나타내는 것을 무섭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대단한 그들을 향하여 아무도 지적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히 누가 그런 지적질을 하겠는가? 어설픈 지적질은 역으로 지적의 대상이 되는 자멸을 초래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러한 주류의 집단에 들어가기 위하여 수년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세상에 대하여 허락받은 사기도 치고, 합법적인 겁박도 하여 얻은 재산을 바탕으로 확보한 가진 자로서 누릴 수 있는 향연을 만끽한다.

발전을 위해서는 현존하는 조직이 진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필요한 혁신적 변화는 또 다른 가진 자들이 생성된다. 바꾸어진 조직도 많은 노력을 본인들이 획득한 조직만을 유지하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또 다른 변혁의 대상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는 또 다른 변화의 필연성을 정당화 시키는 이유만 제공한다.

요사이는 개개인의 결정의사를 표출하는데 투표라는 시스템이 주로 이용된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최근의 방법이라 한다. 이 방법을 통하여 얻은 모든 생각과 권한은 조직을 위하여 적용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한다. 하지만, 이 방법도 이익집단의 사익이 우선시 되는 집단 이기주의의 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왕국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교묘한 논리와 방법으로 이용하고 서로 이용당하면서 살아간다. 정치가는 대부분 정당한 외침을 통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사유화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일에 색칠을 하여 간다. 가진자는 확보된 많은 자산을 지키기 위한 주머니를 만들고 그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그 주머니는 한없이 커져간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주머니다. 가난한 자(?) 또한 사악하다. 가난한 자는 가진 자의 것을 공짜로 가져가고 싶어 하는 그러한 미련함을 담은 주머니를 몸 뒤 어두운 곳에 숨기고 있다.

인류가 갖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들은 왜 존재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만 하는가? 떠 있는 달을 보며 왜 거기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격일까? 결코 동물의 왕국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인간은 분명 동물의 왕국에서는 이단아이다. 그리고 인간세상의 이단아는 동물의 왕국에서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왕국에 다양한 동물들이 약육강식의 사슬에서 살아가고 있다. 씁쓸한 일이다. 인간의 왕국에 인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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