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시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용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8분가량 무릎으로 용의자의 목을 압박했는데 용의자는 숨을 쉬기 힘들다는 요청을 반복하다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이 과정이 그대로 영상으로 녹화가 되어 공개되자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일국양제를 지향해오던 홍콩과의 관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이라고 알려진 새로운 법률해석을 토대로 홍콩에 대한 지배력을 더 높이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세력과는 충돌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 시기에도 인류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가 전 세계에 창궐했던 당시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코로나 종식을 위해 힘을 합할 것처럼 의기투합했지만, 그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하나로 합할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지금 눈앞에 놓인 위기가 너무 커서 화합의 제스처를 처했을 뿐, 이제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이 되자 잡았던 손을 쉽게 뿌리치고 그 이전과 같이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갈등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그 자체이다. 전쟁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기도 했지만 또한 그 과정에서 인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꿀만한 여러 가지 발명품들도 선보이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병으로 복무했던 퍼시 스펜서는 레이더를 정비하던 중에 레이더의 전자파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초코바를 녹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특정 주파수로 음식물의 온도를 빠르게 높이는 전자레인지를 개발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야전병원은 급격히 늘어나는 환자에게 공급할 붕대가 필요했다. 킴벌리 클라크라는 기업은 흡수력이 좋고 가격도 저렴한 셀루코튼이라는 물질로 붕대를 생산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회사는 더 이상 붕대를 팔 수가 없어서 엄청난 재고가 쌓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쟁 중에 여성들이 이 붕대를 겹쳐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셀루코튼을 사용하여 일회용 생리대를 출시하게 된다.

이처럼 인류는 전쟁과 갈등을 통해서 인류사를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그 대가는 무엇인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결과 900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2000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이 수치는 민간인 사망자 2000만 명을 제외한 숫자이다. 2차 세계대전의 총 사상자는 대략 5000만 명에서 700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는 갈등을 통해 사상과 기술이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많은 인명의 손실이다. 갈등과 대립을 통해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다면 나 자신은 ‘승리자’라는 영광에 취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명피해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전한 여러 가지 말들을 단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예수는 언제나 갈등과 대립보다는 ‘서로 사랑’을 더 높은 가치로 전했다. 왜냐하면 갈등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사랑을 통해 얻는 이익이 훨씬 더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치라는 것은 어쩌면 늘 상대적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생명보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유익이 더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희생하다더라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희생되는 생명의 가치 속에 자신의 삶이 포함되는 순간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증명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가? 누구와 갈등하고 있는가? 이런 경쟁과 갈등은 결국 내게 참된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소위 ‘무한경재’사회라고 말하는 오늘날 우리 자신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경쟁에서 이긴다고 한들 내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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