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으로 시작하는 박목월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윤사월이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인 29.5일을 한 달로 해서 만들었고, 양력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기간인 365.2일을 1년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음력 12달은 양력 1년보다 약 11일 정도가 작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대략 3년에 한 달을 윤달로 넣어야 절기도 맞고 정상적인 태양력과 괴리가 안 생긴다.

예로부터 윤달은 귀신도 쉬는 달이라, 평소 귀신의 노여움이 두려워 못했던 일을 해도 탈이 없는 달이라고 했다. 그래서 조상의 묘를 손보거나 이장(移葬)도 윤달인 이때 하면 무탈하다 믿었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먼저 가신 아버님 산소를 개장해 자연장으로 처리하고 싶어 하셨다. 당신이 저세상으로 가게 되면 묻힐 자리까지 정리해 놓고 봉분을 없애 후손의 관리적 부담을 없애고 싶어 하셨었다. 윤사월에 어머니와 상의해 날을 잡고 그렇게 가족묘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쓸데없이 의미 붙이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풍습이겠지만 어쨌든 윤달은 어머니의 바람을 들어드리기 좋은 달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죽음과 영혼을 생각하고, 무덤을 만들어 죽은 이를 기리고 그들의 영혼을 숭배했는가에 대해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략 10만 년 전쯤 중기구석기시대부터 주검을 매장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문화권별로 죽음에 관한 생각과 추모의 방법이 다르고 무덤의 형태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권력이 있거나 힘 있는 자들은 죽은 후에도 잊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 욕망을 무덤으로 남겼다는 것은 대체로 일치하는 것 같다. 그렇게 당사자나 후대의 욕심이 구현된 장소가 무덤일 것이다. 인도의 타지마할, 중국의 진시황릉, 이집트의 피라미드, 각국의 왕릉, 유럽의 성당에 모셔진 수많은 주검 등... 그 예는 수도 없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추모의 방법이나 형태도 바뀌어 왔다. 아마도 정보화 시대의 변화가 거센 금세기를 지나고 나면 죽음을 기리거나 추모하는 방법도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을까 싶다. 공간과 물질적인 추모의 형태에서 정보와 디지털로 기억되는 형태가 될 것 같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OII)의 연구에 의하면 향후 50년이면 페이스북 이용자 계정 중 사망자의 비중이 생존자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현재에도 페이스북은 미리 기념계정을 선택해 사용하면 죽은 후에도 가족이나 지인들이 추모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해놓았다. 삶과 죽음의 존재 형태가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바람처럼 새로 단장하게 된 아버님의 묘소에 조병화 시인의 시구를 옮긴 간단한 묘비명을 주문해 두었다. 자식을 키울 적에는 기대감으로, 그리고 그 후로 더 오랜 시간은 안타까움으로 지켜보았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시다. 그 시의 ‘이 세상은 사랑의 흔적 두고 가는 자리’라는 구절은 떠올릴 때마다 늘 마음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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