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정원이 가꾸어 졌다. 큰 키의 나무를 몇 그루 심고 땅꼬마 같은 나무와 꽃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비슷한 모양이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이어진다. 아파트 저층에 사는 특권으로 사계절 내내 감상 할 수 있는 풍경이다. 벌거벗은 앙상한 모습을 보이다가 물이 오르고 꽃으로 표현해주던 봄날이 저만치가고 이제는 여름의 문턱인가 보다. 더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도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가 눈이 부시다.

아버지 생전에 고향집을 감싸 안은 산자락에 밤나무를 심으셨다. 주먹만한 밤은 제사상에 오르기도 하고 우리들의 학비가 되기도 했다. 자잘한 놈들은 겨우내 두고두고 꺼내먹던 고구마와 함께 최고의 간식이 되었다. 유실수인 밤나무가 가정 경제를 일으키는데도 아버지는 뒷산의 소나무들은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맘때쯤 송화 가루를 털어 내어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지나가는 장독대 옆에 바싹 말렸다가 한가위나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다식을 만들었다. 송편을 찔 땐 솥에 채반을 놓고 솔잎을 소복이 쌓고 찌면 향기가 온 동네에 가득했다. 먹는 내내 은은한 향기로 호사를 누렸었다. 그뿐만 아니라 늦가을엔 낙엽이 된 솔잎을 긁어모아 땔감으로 썼다. 그런 날은 동생과 부모님을 따라 산에 올랐다. 비료 포대에 앉아 솔잎 위를 미끄럼틀처럼 타고 내려왔다. 한 겨울 눈썰매를 타는 것만큼 즐거웠다.

고향집은 하늘과 맞닿은 산들이 계절에 따라 수묵화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수채화가 되기도 한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커다란 굴참나무와 키 작은 도토리나무, 두릅, 고욤, 머루랑 다래까지 헤아릴 수 없이 종류가 많았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堂山으로 비자나무가 있었으며 뒤로 소나무 숲이 다른 마을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는 미거해선지 소나무의 귀함을 제대로 몰랐었다. 군락을 지키던 아버지 나이가 되고서야 마당에서 보는 마을 풍경이 정겨우며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박한 마을이 수없이 이어지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이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지친 마음이 치유가 된다.

지난봄 친정 나들이를 했다. 어찌된 일인지 마을 입구에 울창하던 소나무 숲이 간데없이 사라졌다. 벌거벗은 민둥산이 부끄러운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들리는 말에 산주인이 사정이 있어 나무를 판매 했다고 한다. 섭섭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왕이면 많은 이들이 찾는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면 한다. 어느 부잣집 정원에 심겨져 소나무로써의 제 2의 생을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떠날 수밖에 없는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길 바란다. 그래도 몇 그루라도 남겨져서 다행이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모양새가 상품으로 가치가 없나보다. 다시 어린 묘목이 심겨질 터이고 산은 그저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나이 드나 보다. 태생이 그렇더라도 푸르기만 해야 했던 소나무로써의 고된 삶이 아프게 다가온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 간다. 잠시 눈을 감고 소소한 것에 감사한 시간을 가져본다. 그저 일상의 풍경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