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대한민국에서 불평등의 상징 중 하나로 빠지지 않는 게 군대다.
 

'있는 집 자식은 편한 곳에 가거나 아예 면제되고, 없는 집 자식은 힘든 데 배치돼 만기를 다 채워야 나올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인식이다.
 

박근혜 전임 정부 시절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운전병 보직을 받은 점이 화제가 됐었다.
 

군 당국은 문제가 되자 "코너링이 탁월해서"라는, 말 같지도 않은 해명을 내놓아 비웃음을 샀다.
 


국민들은 '아버지가 민정수석'이라는, 소위 '아빠 찬스'라는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느냐고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그런데 단순 보직 배정을 넘어 너무나 황당한 의혹이 최근 제기됐다.
 

서울 소재 모 공군 부대에서 부모의 재력을 등에 업은 한 병사가 1인 생활관에서 지내며 빨래와 심부름 등을 부사관들이 해주는 등 '황제 복무'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한 내부자 고발 형식으로 나왔다.

 
해당 청원에는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질 수 있나 싶은 내용이 담겨있다.

 
무단 외출과 불법 면회는 물론, 부대원들과의 불화를 구실로 넓은 생활관을 혼자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상급자인 부사관을 후임 부리듯 했다는, 믿기지 않는 내용에 이르러선 그저 어이가 없다.
 

이 병사가 매주 주말 아침 빨래를 부대 밖으로 반출, 가족 비서에게 세탁해오게 하고 음료수를 받아오는 과정에서 부사관이 심부름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군필자라면 알겠지만 목적이 빨래가 됐든 뭐가 됐든 군복 등을 부대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불법이다.
 

게다가 선임 병사의 전역일이 많이 남은 상황에서 편제 상 단독 보직인 부대 재정처에 해당 병사가 배치됐다는 인사 특혜 의혹도 거론됐다.
 

청원인은 이 병사의 부모가 최근까지도 부사관 선·후배들에게 아들의 병영 생활에 개입해 달라는 전화를 밤낮으로 했다고 한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병사의 아버지는 모두 2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금융인프라 그룹의 부회장이다.

 
그러나 아무리 재력이 어마어마하다 해도 일개 민간인일 뿐인데 그 영향력이 부대를 좌지우지한다면 이는 정말 큰 문제다.

 
청원이 사실이라면 부대 내부에서 누군가 이 부모의 비상식적이고 극성스러운 요구를 받아주면서 그 병사에게 편의를 제공했다는 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상관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하극상이 벌어졌다면 이건 더이상 군대가 아니다.
 

일반 기업체의 회장 아들 심부름을 해주는 직원 혹은 하청업체와 다름 아니다.
 

청원인은 올해 초 해당 의혹에 관한 부대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공군은 "올해 초 감찰은 해당 의혹과 관련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감찰을 통해 확인 중"이라며 "조사 결과에 따라 법과 규정에 의거,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만일 청원이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다면 군 당국은 문제의 병사를 엄히 다스려야 한다.
 

'신성한 국가 수호의 의무'만 들먹일 게 아니라 이런 부조리는 일벌백계해 공정의 가치가 휘손되
지 않게 함이 옳다.
 

국민들의 피해의식에 기름을 붓지 말길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