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1932년생인 아버지는 1953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22세 젊은 나이에 전쟁을 직접 겪었다. "전쟁은 수많은 젊은이의 아리따운 청춘을 앗아갔다. 전선의 참호속에서 북진과 후퇴의 산과 들에서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꽃망울을 꺾어 버렸다"(표류기-한 초급장교의 휴전전투 체험- 김진곤, 1990)

아버지가 초급장교로 전투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고 휴전협정 후 귀환한 과정을 기록한 체험기에는 전쟁에 대한 의문이 가득하다. "거대한 양 진영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 답답한 골짜기에 틀어 박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없는 고지에서 잠복근무를 하거나 적의 기습에 의해서 수많은 청년들만 죽어가는 숨 막히는 나날, 전쟁이란 우리에게 얼마나 허망한 넌센스 게임인가!!"

포로로 잡히기 직전, 소대장으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살 시도를 한 아버지는 생사의 순간에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그려내셨다. "지금 이 전투로 수도사단이 전멸했다는 소문이 나게 되고 그 소문을 부모님이 들으시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실까. 순박한 우리 어머니에게 왜 전쟁은 필요한가. 아무 죄도 없는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전쟁은 왜 귀여운 자식들을 총알받이로 만들어야 하는가?"

죽음을 각오했던 아버지지만 자살총상이 무위로 돌아가고 귀향에 대한 희망이 생기자 삶에 대한 강한 집념도 보였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가슴 부상 부위가 가려워서 못 견디겠다. 전깃불 가까이 가서 가슴을 보니 상처 부분이 하얗다. 구더기가 썩은 살을 갉아 먹은 것 같다. 결국 군의관 대신 구더기의 치료를 받았단 말인가!!"

전쟁 때문에 강제로 고향을 떠난 동년배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체험기 곳곳에 나타난다. "그들도 지난번 만났던 간호원들처럼 6.25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월북해서 지금까지 인민군에 있다는 것이다. 간호원들은 개성 쪽이 가까워지자 고향생각이 나 몹시 괴로운 듯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멘다. '동무들은 고향에 돌아가니 좋겠어요!' 울먹이며 고개를 떨군다. 간호원들은 내 또래다. 저들은 언제쯤 고향 부모를 만날 날이 있게 될 것인가. 전쟁이 멎은 지금, 앞으로는 더욱더 어렵지 않을까. 측은한 생각이 든다. 적당히 위로할 말도 없다."

아버지는 지난해 9월 추석날 소천 하셨고 임실호국원에 잠들어 계신다. 아버지는 생전에 전쟁 체험기를 기록한 이유에 대해 "같은 민족끼리 이런 전쟁을 벌여야 하는 이유를 누구도 명확하게 이야기 하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로서 그 때 그 감정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말씀하셨다.

북한에도 아버지처럼 '전쟁은 허망한 넌센스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참전용사가 있을 것 같다. 북한에도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맞댄 전쟁에 대해 '바보같은 짓'이라고 하는 어르신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갖는 의미를 남북한은 '평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평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민족 공멸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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