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지난 4일 국회에 제출된 35조3000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20일 넘게 낮잠을 자고 있다.

여야의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국회 정상화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코로나19 방역이 위기에 빠졌으며 이로 인한 전대미문의 경제 쇼크와 민생 악화가 국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어쩜 저렇게까지 '한결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변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저들은 정말 변해야 하는 데도 그 국민적 염원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국민과 함께'를 붙인다.

정작 국민들은 자신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국회에서 3차 추경 심사 착수가 안 돼 굉장히 안타까우며 속이 타들어간다"고 호소했다.

이날 국회를 찾은 홍 부총리는 박병석 국회의장과 만나 "국회에 제출된 지 3주 정도가 지난 3차 추경을 다음 주 말까지는 꼭 통과시켜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3차 추경 중 5조원 규모인 정책금융기관 출자 출연 보증기금이 지원돼야 135조원 규모의 금융지원패키지 지원이 가능하다"며 "10조원 규모의 고용대책 예산 중 고용유지지원금을 58만명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역성장을 막기 위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을 11조3000억원 담았다"며 "경기 보강 지원을 위해 꼭 필요한 실탄만 담았다"고 덧붙였다.

야당인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5일 법사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하자 협상을 중단한 채 전국 사찰을 돌며 잠행했다.

그러다 주 원내대표가 머물고 있던 강원도 고성 화암사를 수소문 끝에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찾아가 회동했다.

두 사람은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의 결론을 내지 못 하고 만남을 끝냈다.

김 원내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주 원내대표와 큰 틀에서 국회 정상화와 3차 추경의 신속한 처리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는 같은 날 언론에 "처음과 변한게 하나도 없었다"며 "우리는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충무공의 정신과 방법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 뿐 아니라 국민과 하나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충무공을 입에 담는 것도 모자라 또 국민을 들먹거린다.

국민들은 숨통을 틔워달라고 하는 판국인데 자기들의 자리 싸움에 국민들로부터 협조라도 구하겠다는 말인가.

뭔가 달라지려나 했던 국회의 일그러진 모습에 저들이 늘상 입에 달고 사는 '국민'들은 다시 정치를 조롱하고 있다.

포털 뉴스의 정치 관련 댓글은 크게 "이러라고 그 많은 의석을 준 줄 아느냐", "너희들이 여당일 땐 안 그랬냐" 는 등의 반응으로 요약된다.

통합당을 원내로 유인하지 못 하는 민주당의 정치력도 그렇지만 원내사령탑이 국회를 떠나 전국 사찰을 떠돈 통합당의 무책임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의석 수 차이 등 환경 탓만 하지 말고 여야는 상응하는 권한과 책임을 직시하며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과반 여당이라 해서 밀어붙이기만 하고, 소수 야당이라 해서 현실성 없는 반대만 해선 양 측 모두 얻을 것이 적다.

냉전 시대로 후퇴하는 남북 관계도 걱정이지만 당장 급한 일은 추경안 처리다.

여야는 조속히 원 구성을 매듭 짓고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