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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감방장 어윤희, 독립의 불꽃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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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5  14: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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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탁, 타닥 탁” 벽 두드리는 소리, 암호다.

1920년 3월 1일 오후 1시, 8호 감방에서 시작된 벽 두드리는 소리는 삽시간에 조용히 전달되었다. 암호와 함께 서대문형무소 온 감방에서는 일제히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독립투사들은 물론, 일반 죄수들까지 합세하여 수감자들의 목을 통해서 일제히 터져 나온 피맺힌 절규,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서대문 형무소를 쓰나미처럼 덮쳤다. 무려 3,000여 명의 수감자들이 동참했다.

3.1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외치는 감방에서의 만세운동이었고, 시발점은 8호 감방이었다. 이 방에서 막내인 유관순은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생이었다. 열일곱 살, 꽃봉오리 그녀는 이 일로 인한 고문으로 그해 9월 감방 안에서 순국했다. '三七一' 그녀의 오른쪽 가슴에 선명하던 수형번호는 지울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상흔이다.

8호 감방장은 수형번호 三七0 어윤희, 바로 우리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이다. 1880년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 출신이다. 감방 안에서 맏언니이면서 유관순에게는 어머니 격이었다. 그녀의 성격은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다. 어떠한 압박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만큼 배짱도 두둑했다고 한다. 8호 감방은 이런 어윤희 감방장을 중심으로, 서로 보듬고 의지하며 3.1운동 1주년 만세운동을 주도해 나갔던 것이다. 권애라, 김향화, 심명철, 임명애, 신관빈 등이 함께 했다.

옥중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펼치다니,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 일을 감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들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주권을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녀들이 감행 했던 힘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들의 행적을 짚어보면서도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옥중에서 그들이 끌어안고 부른 노래가 전해온다.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끓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 했네/ 피눈물로 기도 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서대문 형무소의 옥중 만세운동에 깊은 감화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캐나다 의료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다. 8호 감방을 자주 찾은 그는 어윤희 선생과 의남매를 맺었고, 그녀를 ‘끌 수 없는 불꽃’이라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랬다. 그녀의 삶은 꺼지지 않는 불꽃, 암울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었다. 전형적인 선비 집안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12세에 어머니를 잃고, 16세에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동학에 참여하여 전사 한다. 2년 후 아버지마저 여의고, 고향을 떠나 개성에 정착을 한다.

1909년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고 미리흠 여학교와 호수돈여숙을 졸업한다. 1919년 호수돈 학생들과 개성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투옥된다. 출소 후에도 독립자금 지원, 무기 전달 등 독립운동과 고아들을 돌보며 인권옹호 활동으로 평생을 살다 1961년 8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정부에서는 1953년 나이팅게일장과,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옥중에서 그녀들이 만세를 부른지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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