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산골 소녀인줄 알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도하게 곧추선 것이 도회지 처녀 못지않다. 그 모습에 누군가 심술이 났나. 어쩌면 혼잡한 일터에서 서두르다 엉겁결에 스치고 지나갔나 보다. 그의 가냘픈 목이 처참하게 분질러져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뜨거운 햇볕에 생기를 잃어가는 것이 안쓰럽다. 

축 처진 어깨를 감싸 안아 집으로 데려왔다. 바람이 잘 지나가는 주방 옆 나만의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반신욕을 하듯이 찻잔에 몸을 담그어 주었다. 서 너 시간 만에 볼이 발그레하다. 갈증이 심하여 단숨에 들이켰나 보다.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받아 나도 목을 축이고 조금 더 따라 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의 안색을 살핀다. 밤새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등불처럼 집안을 밝히고 있다. 이런 행태를 보는 남편은 소꿉장난하는 아이 같다며 타박을 주면서도 눈길은 그의 탐스런 모습에 멈추었다. 

일터로 나서기전 들여다보고 집으로 들어 설 때도 가족들에게 인사는 미루어 두고 그의 안부를 챙긴다. 혼자서 어떻게 지냈는지. 적적하지는 않았는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부터 사진을 찍어 두었던 것을 카페에 올렸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도 언제든지 들어 와서 볼 수 있도록 카톡의 창으로 올려 두었다. 동료들에게는 손주 자랑하는 할머니처럼 보여 주며 예쁘다는 말을 기어이 받아 내었다. 하지만 나흘째 되는 날부터 생기를 잃어간다.

아침부터 시름시름 앓는다. 아래쪽은 이미 가랑잎처럼 누렇게 변색되었다. 찻잔의 물을 시원한 것으로 갈아 주었는데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받은 미음을 흘러내리는 노파의 모습처럼 애처롭다. 혼자 남겨두고 출근하자니 마음이 불편하다. 함께 할 수 없는 출근길을 나섰다. 일터에서는 일에만 열중하게 된다. 그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 버렸다. 일에 열정을 가졌던 만큼 허기가 져 남편과 저녁을 달게 먹었다. 그때쯤에 그의 주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쉽게 스러질 줄이야. 

그는 백일홍 이라는 꽃이다. 백일동안 피고 진다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데 누군가의 부주의로 너무나 쉽게 세상을 떠나갔다. 다음 생을 기약하지도 못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자리가 있다. 그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에서 열매를 맺어 씨앗이 되었다면 아마도 이런 아쉬움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원래의 있던 자리에서 뽑아내거나 꺾어 자신만의 화단이나 화병에 담기를 좋아한다. 나도 가끔 들꽃을 꺾어 집으로 들고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한창 제 할 일을 해낼 꽃들이 화병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제자리에서 돌봐주었더라면 그에게 주어진 생을 기꺼이 살아 내었을 것이다.

어느 백일홍의 생을 보며 사람의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제자리에서 부모, 자식, 사회인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진정한 애정을 갖는다면 늙은 부모를 버리는 일도 훈육을 빌미삼아 자식을 해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주의로 누군가 다치는 일보다 그대로의 삶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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