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덕 칼럼니스트

 

[기고] 장연덕 칼럼니스트

평화는 항구하지 못하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같은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란 그저 그랬던 모양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썩이고 잠잠하고를 반복하는 괴수같이 도사린 지금, 총성이 잦아들었던 한반도 한가운데에서 다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개성공단 연락사무소의 형체가 하루아침에 없어졌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확실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는 다시 ‘또’ 깨졌다는 것” 이것입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배고프고 남의 나라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서는 평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나라가 두 동강날 때의 출발선에 여지없이 또 한 번 붙들려 가는 중입니다. 이토록 지리한 반복이라니.

북한이 영원한 주적이다, 라고 외치며 다시금 대적관계로 돌아서는 것 혹은, 그래도 대화를 해보자며 다독이는 것, 이번엔 뭘 선택해야 하나, 또 한 번 나라 안의 마음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위정자도 국민도, 정확하고 유일한 정답을 알고는 있나 싶습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명확한 것은 “주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힘이, 한반도에 온전히 있지 못하다는 그것입니다. 구한말 나라 팔아먹던 놈들이 판을 치던 때처럼 외세의 힘을 여전히 빌려야 하는 것입니다. 팔다리를 모두 각각 다른 손님이 들어와 잡아당기는 집주인의 모습이지요. 어쩌면 한반도가, 주위 열강들의 수혈을 담당하는 실험실 수혈견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반도의 등줄기에 주삿바늘을 꽂고 피를 뽑는, 폭력의 본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한반도의 비극을 끝내지 못하게 만드는 그 주인이 누구냔 말입니다. 남한이 문제냐 북한이 문제냐를 따지기 전에, 언제부터 한반도의 주인이 바뀌었는지를 떠올렸으면 합니다. 적폐먼저 청산하겠다, 누가 적폐인지 가려내겠노라, 누가 토착왜구냐, 이런 논쟁이전에, 한반도의 실질적 주인이 누구인가를 드러낼때가 아닌가 합니다. 

적폐냐 아니냐를 가르며 싸워 제압하고 자리와 권력을 장악하려는 반복되는 소모전은, 소작농에게 매질하며 땅주인의 눈치를 보는 마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본래 수탈을 일삼던 가짜주인이 누구라는 얘기는 왜 못하십니까. 땅 뺏어간 그 가짜 주인에게 줄을 대고 마름질을 하느라 못하십니까! 역사청산은 뭐 노래방 18번인지 자주는 부르시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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