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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살인곽봉호 옥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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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9  14: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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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곽봉호 옥천군의원

살인은 비록 잔인한 방법이나 세상에는 죽여야 할 사람들이 널려 있고, 또한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인데 무고하게 죽는 경우도 많다.

살인의 근본은 인의도덕을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단지 죽일 대상이 누구이고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느냐 마느냐, 즉 ‘나에게 역행하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상 제일 보편적인 살인 원칙이다.

비교적 영악한 살인자는 조조(曹操)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예형(禰衡)을 죽일 때 유표(劉表)의 손을 빌었고, 양수(楊修)를 죽일 때도 “군심을 현혹했다”는 죄명을 씌었다. 감쪽같이 당당하게 죽여, 그의 살인은 정당화 되었다.

게다가 조조는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자비까지 연출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점이 ‘간웅(奸雄)’적인 모습인 것이다.

중국 문화혁명(1968-1978)은 ‘남의 칼을 빌려서 상대방을 제거한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전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당시 자본주의적 요소를 사회주의와 결합하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중국의 미래를 이끌고자 했던 주자파(走資派)가 모택동의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를 계기로 중국의 정권을 잡아가고 있었다.

이때 유소기(劉小奇)와 등소평(鄧小平)으로 대표되는 개혁파에게 실권을 내주어야 했던 모택동은 차도살인의 계책을 이용한다. 모택동은 당시 국방부장이었던 임표(林彪)와 사인방(四人幇)을 부추기고, 자신을 영웅시하던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힘을 빌려 홍위병으로 변신시킨다. 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자신의 노선에 반대하는 반대파를 하나하나 제거하기 시작한다. 결국 모택동은 자신의 별장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모순과 갈등 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살인에는 현명하고 우매한 등급이 있다. 우매한 사람의 살인은 시퍼런 칼을 들고 들어가 붉은 피를 뿌리며 사람을 죽인다.

겉보기에는 영웅적이고 통쾌할지 모르나 이렇게 되면 법률적인 제재를 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남들로부터 잔인하고 난폭하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영리한 사람의 살인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법률을 이용하거나 남의 손을 빌어 수행한다.

이렇게 되면 목적도 달성되고 인의 도덕이라는 명분에도 어느 정도 여지를 갖게 된다. 소위 ‘살인을 할 때는 피를 보지 말아야 하며, 피를 보면 영웅이 아니다’는 말이 매우 좋은 설명이 될 것이다.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내 칼을 빼서 상대방을 칠 수도 있고, 나의 우방이나 상대방과 모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이용하여 우회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도 있다.

‘너는 우리 조직의 적이다. 나의 칼을 받아라’라고 당당하게 칼을 빼 들어 상대방을 베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하수(下手)다. 명분과 폼은 좋을지 몰라도 반드시 후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리면 내 주먹에 상대방 피가 묻는다. 피를 입에 머금고 상대방에게 뿌리면 내 입부터 더러워진다(含血噴人함혈분인, 先汚其口선오기구)’라는 옛날 말이 있다.

내 손을 직접적으로 거치지 않고 나와 갈등과 모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없앨 수만 있다면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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