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첫째 주

▲ 충청일보 1970년 7월 4일자 1면.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1970년의 절반이 지나갔지만 이 때도 여야는 여전히 국회에서 대립각을 세우며 파행을 이어갔다. 지금 세대는 말해도 모를 '부랑아'라는 단어는 물론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뇌염'에 대한 대비책 촉구 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기사들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1970년 6월 30일

6월의 마지막 날 1면에는 '37차 國際(국제)펜大會(대회) 開幕(개막)' 제하의 기사가 머리에 올라있다.

'東西文學(동서문학)에 있어서의 해학을 주제로 하는 제37차 국제펜서울大會(대회)는 29일 上午(상오) 10시 朴正熙大統領(박정희대통령)을 비롯하여 33개국에서 온 1백30여명의 작가와 韓國作家(한국작가)67명이 참가한 가운데 歷史的(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서울大會開會式(대회개회식)은 毛(모)윤숙準備委員(준비위원)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됐다'고 설명이 돼 있다.
 
△1970년 7월 1일

3면 머리의 '浮浪兒(부랑아) 善導(선도)하자'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내용은 '충북도는 부랑아선도육성과 명랑한사회기풍 조성을 위해 1일부터 9월30일까지 3개월간을 부랑아단속기간으로 설정하고 특별단속반을 시·군단위로 편성 도시및관광지를위주로한 집중단속에나섰다'로 요약된다.
 
△1970년 7월 2일

이 날도 3면 머리를 차지한 '腦炎前線(뇌염전선) 無防備(무방비)' 제하의 기사가 당시를 말해주고 있다.

'보사부당국은 뇌염발생이 가장 심했던 지난 49연도에 이후 올해를 뇌염다발(多發) 주기연도로 보고 일선보건당국으로 하여금 뇌염전쟁에 대비, 만전을 기하도록 강력한 지시를 내렸으나 정작 일선보건당국은 중앙으로부터 뇌염예방에 대한 약품을 전혀 배정받지 못해 고작 건물및 하수구 소독밖에 손을 못쓰고있는 실정이다'라고 요약돼 있다.
 
△1970년 7월 4일

이 때도 여전히 국회는 대립각을 지속했다.

1면 머리 기사의 제목은 '國會(국회) 사흘째 空轉(공전)'이다.

'共和黨(공화당)은 兼職議員(겸직의원)파동으로 빚어진 政局(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1주일간 本會議(본회의)를 休會(휴회), 安保特委(안보특위)구성및 內務委(내무위)의 選擧關係法(선거관계법)심의등을 위해 냉각기를 갖도록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데반해 新民黨(신민당)은 兼職議員波動(겸직의원파동)과 民主前線(민주전선)사건에대한 對政府質問(대정부질문)을 즉각 벌이자고 맞서 國會(국회)운영일정에 與(여)·野(야)가 크게 對立(대립)되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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