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탑골공원. 벤치 아래 지렁이 한마리가 말라 가고 있다.

언제부터 그런 상태였는지 온몸을 사방으로 꿈틀대지만 제자리를 맴돌 뿐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칠월의 태양은 지렁이 몸에 남아 있는 수분을 증발시키고 달라붙은 흙먼지는 더욱 피부를 옥조인다.

지렁이가 이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려면 비가 내리든지 누군가 습기가 있는 곳으로 옮겨줘야 한다.

비는 올 것 같지 않고 나또한 지렁이를 다른 곳으로 보낼 용기가 없어 자리를 조금 비켜 앉았다. 그래도 꿈틀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태양은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한 열을 뿜어내고 지렁이의 움직임은 조금씩 느려진다.

마시고 있던 캔커피 한 방울을 지렁이에게 떨어뜨려 보지만 꼬리를 위로 올렸다 이내 떨어뜨린다.

이런 상태라면 지렁이는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생명이 다 할 것이다.

그런데도 태양은 여전히 공원에 떠있고, 노인들은 부채질을 하고, 매미는 더욱 큰소리로 짝을 부르고, 비둘기 너너마리 잔털을 날리며 날아간다.

빌딩 벽 텔레비전에서는 비정규직 법 협상이 무산되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그 일을 주관하는 사람들의 손마디는 곱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지렁이 몸은 굳어 이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서울 살이 오 년차 장씨는 오늘도 인력시장에 앉아있다.

손바닥에 잡힌 굳은살을 뜯어내며 부도로 인해 감당해야할 부채와, 아내의 잔소리를 생각한다.

▲ 김윤재 청주ymca 홍보출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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