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내일을 열며]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모든 조직은 다양한 성격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서 협력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상층부에 있는 최고책임자부터 저 밑의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나’라고 하는 의식보다는 ‘우리’라고 하는 의식을 정립할 것이 요구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이나 유럽에서 조직들은 철저한 평가제도 확립을 통해 제도적으로 협력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을 통한 지휘와 복종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에 대한 엄정한 평가보다는 상하 간의 질서와 정(情)의 가치관으로 조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소위 ‘정’을 통한 조직 관리는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사회 전반에서 갑질이 근절되지 못하고, 사회 일각에서 아직까지 구타가 잔존하는 것은 철저한 개인 존엄의 철학과 사상이 사회 저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서 관계 장관이나 조직의 수장에게 강력한 재발방지책을 주문해도 소용이 없다. 모든 직장에서 갑질은 여전하고, 그 와중에 최근 한 지방자치단체 소속 경기 팀에서 한 달이면 열흘 이상 구타를 당했다는 젊은 여성 선수 한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한 선수가 경찰에 찾아가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소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체포와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후로 의지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마저 체육계에서는 으레 있는 일로 치부했다니,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의식이 여전히 원시적이라는 것을 바로 증명한 셈이다. 이번 젊은 여성 선수의 자살사건은 경제는 크게 발전했으되, 인간의 존엄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은 아직 후진적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 사회가 무한경쟁 시스템, 천민자본주의의 숭상, 군사문화, 사람을 종적으로 대하는 관습 등을 운영상의 주요 기둥으로 삼고 있는 탓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으로나 조직 안에서나 일정한 문화적 틀 속에서 숨 쉬고 활동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잘 의식하지 못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체육계는 으레 그렇지 않느냐, 뭐 이런 것으로 신고까지 하려고 하느냐’ 하는 태도를 나무라기 어려운 것도 우리 사회가 그런 악습을 일종의 문화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린 여성이 구타를 당해도 방치되고, 신고를 받은 경찰관도 별것이 아닌 일로 대응하도록 만드는 사악한 문화의 지배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이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비단 체육계만의 문제도 아니다. 소위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찰 조직에서도 남성 상사 검사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여성 검사들이 고소를 해도 무죄로 판결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개인의 존엄과 인권에 대한 문화와 제도가 후진 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행한 일인가. 전혀 새롭고 충격적인 제도개선을 통한 새로운 개인 존중 문화의 개발과 정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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